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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참, 멋진 날들이다. 안 그냐. 더보기
[201010 / 가을] 가을인가요. by 김교주 1969년 9월, 향후 수십 년간 대한민국 국문학 전공자들을 먹여살리고도 남을 만큼 위대한 작품이 세상에 그 첫 얼굴을 내밉니다. 지금이라도 각종 논문검색 사이트의 검색어란에 이 책의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입력해 본다면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가을, 그 주제를 받아들고 제가 소개하는 책은 이제는 고인이 되신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입니다. 토지세트(전21권)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대표소설 지은이 박경리 (나남, 2007년) 상세보기 보시다시피 토지는 전 21권 한질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분량의 작품입니다. 일주일에 한 권을 읽는다 하더라도 대략 반년의 시간을 들여야 할 테고, 이 작품이 가진 무게를 생각한다면 그 기간은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토지 인명사전이.. 더보기
[201010 / 가을] 秋露. by 란테곰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버스를 기다리며 터미널에 앉아 있노라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 한 마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 문득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웠는지를 떠올려보았지만 영 가물가물했다. 왜 그리 가물가물한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그대’라고 부를 사람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기에 가물가물할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운지를 확인하려면 같이 살아보든가 적어도 같은 침대를 한 번쯤 써 봤어야 확인이 가능한 거 아니냐며, 그런 사람이 있으면 굳이 가을뿐만이 아니라 사시사철 언제 봐도 아름답지 않겠냐며 혼잣말로 이죽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 올랐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버스 안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월이지만.. 더보기
[201009 / Sex] 리비도 보존의 법칙 by 빛바랜편지 신고식이라는게 항상 짓궂기도 때로는 가혹하기도 하다지만 이건 좀 너무하잖는가. 에일레스 누님의 입성에 새우등이 터진다. 유일한 20대에게 이것은 가혹하다. 게다가 '아무것도 몰라효'의 20대 초반도, '이미 다 알아효'의 20대 후반도 아닌, 어설프게 아는 애매한 나이라 더 당혹스러운 주제다. 적정선에서 바람직한 결론을 내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정도로 써보려고 애쓰게 된다. 물론, 거짓은 없다. 스물 한 살 겨울, 그녀와 나는 제부도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핑계로 그 전날 저녁은 내 자취방에서 함께 보내기로 했다. 그 날 저녁, 그녀가 우리 집으로 오는 길에는 많은 일이 있었지만 주제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다. 여러 먹을 것들을 해치우고나서, 우리는 애매한 자세로 붙어있는 형세가.. 더보기
[201009 / Sex] '나'의 꿈, '너'의 꿈, '우리'의 꿈. by 란테곰 주의 : 이 글은 매 달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쓰는 팀블로그의 이번 달 주제인 섹스라는 대주제에 글쓴이가 맡은 일상이라는 소주제를 담아 작성된 글입니다. 구체적인 묘사가 많으므로 읽으시는 동안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안내해드리고, 동시에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싸구려 모텔 특유의 분위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방 안. 머리맡에 놓인 스탠드의 불빛으로 침대의 주위를 밝혀 이질적인 분위기가 연출된 그 공간에서 난 지독한 패배감을 느끼며 그녀의 안을 열심히 휘젓고 있었지만,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다른 때에 비해 훨씬 더 흥분한 그녀는 내 등에 손톱 자욱을 남기며 쾌락의 파도를 타느라 여념이 없었다. 허리를 흔드는 것, 물고 빨고 핥는 것, 어루만지는 것 하나하나에 추임새를 넣듯 강한 신음을 토.. 더보기
[201009 / Sex] 악마조차도 타락하리라, 당신 앞에서라면. by 김교주 사드의 책들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다. 오랫동안 그의 이름은 저주와 함께가 아니면 결코 언급되지 않았으며, 그의 작품이 강간, 근친상간, 남색, 고문 등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서 그 같은 악명의 꼬리표들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중략- 기득권을 갖고 있던 세력층이 신봉하던 부르주아지의 양식은 그의 작품을 일개 성도착자의 광란으로 단정짓고 말았고, 이러한 결과의 연장선으로서 하이라이트는 바로 그의 오명의 대명사가 된 ‘사디즘’이라는 단어의 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이 문단은 에 실린 역자의 말 에서 발췌한 것이다.) 고도 출판사에서 2000년 8월에 발간된 이 책 은 그 번역자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면서 누가 번역했는지는 끝내 미궁에 빠져 있다.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역.. 더보기
[201009 / Sex] 세상을 몸으로 받아들이다 by 에일레스 얼마 전 본 미드 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습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매력적인 간호사 셀마 헤이엑과 데이트중인 알렉 볼드윈은 티나 페이와의 대화 중에 셀마 헤이엑과 '다음 과정'을 밟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티나 페이는 "결혼이요?" "동거요?" 하고 묻지만, 아니라고 대답하던 알렉 볼드윈은 "지금이 90년대 중반이라고 생각해보게." 라고 대답하고, 티나 페이는 깜짝 놀라며 묻습니다. "아직 같이 안 잤단 말이에요?(You haven't had sex?)" 그렇습니다. 우리는 연애하는 사람들이 섹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랑의 표현이 당연해졌고, 자연스러운 시대라는 뜻도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만나고, 사랑하고.. 더보기
[201008 / 기억] 그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는 방법 - 기억 by 빛바랜편지 한 새끼고양이가 남고 기숙사로 들어왔다. 사람 손을 많이 탔었는지 애교도 많았다. 아이들은 그 귀여운 모습에 우유 등을 주며 고양이를 키우려했지만 하루도 못가 사감에게 적발되어 다시 내어놓아야 했다. 바로 그 다음날 저녁, 고양이가 돌아왔다. 하지만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인지 고양이는 허리 아래 절반을 쓰지 못했다. 꼬리가 축 늘어진 채 뒷다리를 질질 끌며 앞다리만으로 기어다녔다. 측은함을 견디지 못해, 아이들은 최대한의 보안을 유지하며 몰래 키우기 시작했다. 귀엽다고 키우긴 시작했다만, 멀쩡한 고양이라도 배변훈련을 시킬 줄 몰랐을텐데 뒷쪽을 전혀 못쓰는 고양이를 키우려니 애로사항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떤 음식을 주어야하는지 몰라 우유나 과자를 주었고, 당연히 설사를 하게 됐고, 거의 거동을 할 수 없.. 더보기
[201008 / 기억]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그러나, 기억은 기록의 어머니다. by 김교주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쓰며 자신의 경험을 은근슬쩍 끼워넣는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그 경험들은 윤색되고, 미화되며, 과장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 여기 내가 소개하려는 이 책을 쓴 작가는 자전적 소설의 대가라고 불려도 억울하지 않을 사람이다. 그많던싱아는누가다먹었을까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박완서 (세계사, 2008년) 상세보기 정말이지, 너무 유명한 책, 너무 유명한 작가. 감히 내가 손대어 어떻게 말해보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무게로 다가오는 이 책. 한국 전쟁에 대해 내 세대는 어떤 기억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시쳇말로 닳고 닳은 소재라는 것 역시 부인할 수가 없다. 숱한 타자의 기억들이 인쇄물로 던져지고 넘치고 흐르는 정보의 과잉은 한국전쟁을 굴리고 굴리.. 더보기
[201008 / 기억] 일곱 살, 구슬 겜블러 김란테곰. by 란테곰 좁디좁은 계단을 통해 올라간 다락방에는 먼지가 잔뜩 내려앉아있었다. 보관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되어진 물건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들어앉아 자신의 덩치를 뽐내던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를 가진 앉은뱅이 다락방. 불이 켜지질 않아 조그마한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이 상자 안엔 무엇이 들었고 저 서랍 안엔 무엇이 들었는지 열어보는 것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할 만큼 어두컴컴하고 음습한 공간. 그 공간의 입구에 걸터앉은 난, 자그마한 모험심을 충족하는 것 더하기 구슬의 자본을 회복할 수 있는 상황과 먼지구덩이를 뒤집는다며 어머니한테 혼날 것을 저울질하며 고민하다 결국 첫 번째 서랍의 문을 열었다. 친구들과 구슬 따먹기를 하다 내가 갖고 있던 구슬을 모두 잃고선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는 와중에 인창동에서 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