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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01008 / 기억] 일곱 살, 구슬 겜블러 김란테곰. by 란테곰

좁디좁은 계단을 통해 올라간 다락방에는 먼지가 잔뜩 내려앉아있었다. 보관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되어진 물건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들어앉아 자신의 덩치를 뽐내던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를 가진 앉은뱅이 다락방. 불이 켜지질 않아 조그마한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이 상자 안엔 무엇이 들었고 저 서랍 안엔 무엇이 들었는지 열어보는 것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할 만큼 어두컴컴하고 음습한 공간. 그 공간의 입구에 걸터앉은 난, 자그마한 모험심을 충족하는 것 더하기 구슬의 자본을 회복할 수 있는 상황과 먼지구덩이를 뒤집는다며 어머니한테 혼날 것을 저울질하며 고민하다 결국 첫 번째 서랍의 문을 열었다. 친구들과 구슬 따먹기를 하다 내가 갖고 있던 구슬을 모두 잃고선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는 와중에 인창동에서 세곡동으로 이사하며 박스에 넣어둔 채 꺼내지 못했던 구슬이 떠올라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집에 돌아왔고, 혼나더라도 본전은 찾아야 된다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목표로 했던 구슬은 쉽사리 나오질 않았다. 오만 곳을 들쑤셨지만 나오는 것은 외사촌형에게 얻어온 과학상자, 드래곤 볼 짝퉁 만화책인 도라곤의 비밀, 아카데미에서 나온  프라모델 등등, 지금은 몹시 그리운 물건들이지만 그 당시의 내게는 그닥 필요치 않은 것들만 쏟아져 나왔고, 뒷일을 어찌 감당할지는 잊어버린 채 그저 많이 혼나더라도 본전을 찾아야 된다는 일곱 살짜리 구슬 도박꾼은 결국 일을 벌이고야 말았다. 평화로운 먼지로 더께 앉은 다락방을 한참을 뒤집고 헤집고 난장판을 벌인 것. 꽤 오랜 시간을 뒤집다 결국 구슬을 찾아내고선 이젠 내가 잃은 구슬을 벌충하는 일만 남았다는 기쁨과, 어두운 곳에서 혼자 무언가를 찾아냈다는 성취감에 고양되어 그 먼지 자욱한 방에서 쪼그리고 앉은 채 양 손을 번쩍 들고 환호를 올리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다락방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다 마침 방에 들어오시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일곱 살 구슬 도박꾼은 원대한 ‘구슬 벌충 계획’을 종료당하고 ‘모험으로 살아 숨쉬었던 다락방 정리’ 라는 새로운 계획을 강제 집행 당했다. 부뚜막에 앉아 우는 어린 송아지도 아니건만 ‘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 라 외칠 수 있을 정도로 맞은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결과 중 하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