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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01008 / 기억] 그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는 방법 - 기억 by 빛바랜편지

  한 새끼고양이가 남고 기숙사로 들어왔다. 사람 손을 많이 탔었는지 애교도 많았다. 아이들은 그 귀여운 모습에 우유 등을 주며 고양이를 키우려했지만 하루도 못가 사감에게 적발되어 다시 내어놓아야 했다. 바로 그 다음날 저녁, 고양이가 돌아왔다. 하지만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인지 고양이는 허리 아래 절반을 쓰지 못했다. 꼬리가 축 늘어진 채 뒷다리를 질질 끌며 앞다리만으로 기어다녔다. 측은함을 견디지 못해, 아이들은 최대한의 보안을 유지하며 몰래 키우기 시작했다.

   귀엽다고 키우긴 시작했다만, 멀쩡한 고양이라도 배변훈련을 시킬 줄 몰랐을텐데 뒷쪽을 전혀 못쓰는 고양이를 키우려니 애로사항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떤 음식을 주어야하는지 몰라 우유나 과자를 주었고, 당연히 설사를 하게 됐고, 거의 거동을 할 수 없으니 먹은 자리에서 차곡차곡 배설을 하게 된거다. 보기에도, 냄새 맡기에도 상당히 더러워졌다. 누가 선뜻 목욕을 시키겠다 하는 이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도 젖 뗀 강아지가 자기 어미랑 떨어져 남의 집으로 가는 심정이 얼마나 슬플 것인가 견디기 힘들어 괴로워했던 나였다. 결국 학기가 끝나고 기숙사 퇴사하기까지 대부분 도맡아서 관리를 하게 되었다.

   학기도 끝나고 보충수업 등 방학일정도 모두 끝나 기숙사에서 나가야 했던 겨울날, 고양이를 누가 챙길까 눈치는 보았지만 그렇다고 데려갈 마음이 있었던 아이들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 고양이라면 기겁을 하시는 어머니께 고양이의 딱한 사정을 설명드리고 설득하여 우리 집으로 데려갔다. 따뜻한 집에서 정성으로 먹이고 길렀더니 훨씬 활기차졌고 고양이를 무척 싫어하시던 어머니께도 곧잘 애교를 부렸다. 이제 뒷다리만 아프지 않으면 좋을텐데, 하고 기적을 바랐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어떤 음식을 먹어야하는지, 배변훈련은 어찌 시켜야하는지, 주사는 맞혀야하는지, 습성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던터라 집에서도 여러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는 특히 배변훈련 실패로 인한 냄새와 빨랫거리에 지치시고는, 밖에 내어놓기로 못을 박으셨다. 밖에 나가서도 워낙 사람을 반기며 (앞다리로만) 잘 뛰어노는터라 마냥 기쁘더라.

   매섭게 추웠던 어느날, 난 오늘만은 고양이를 들여서 재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머니께 말해보았으나 어머니는 단칼에 거절하셨다. 한 번 들였다가는 계속 들여야 할 거라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고양이 집에 두꺼운 이불을 둘러 찬공기를 막아주었다. 마음이 쓰여 어렵게 자고 일어나 밖에 나가보았더니,

고양이는 엎드려 자는 채로 차갑게 굳어있었다.

   나는 '그러게 왜 집안에 들이자니까 이렇게 되게 두었'냐며 어머니께 원망의 소리를 연달아 쏟아냈다. 어머니도 결국 글썽거리시며 오히려 죄책감이 드셨는지, 당신도 마음이 아프니 그만 해두라고 하셨다.

  난 그 후, 내 손으론 동물을 키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들을 하나하나 챙겨주며 언젠가는 일어날 이별 맞는것에 대해서 감당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고양이로 인한 트라우마였다. 키우던 동물을 내다버리는 인간들이나 입양한 지 얼마 안되어 필요한 정성을 감당하지 못해 보내버리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애초에 키우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허나 냥덕들은 '묘연'이 있다고 하던가. 동네 길가에서 할말이 있는듯 날 빤히 쳐다보는 고양이가 있어 가까이 가서 한참 눈빛을 교환했던 날의 저녁, 골목 구석에서 홀로 울고있던 새끼고양이를 발견했다. 흡사 '이 인간이 고냥님을 모실 자질이 있는가' 테스트를 받은 느낌이었달까. 여튼 나는 그 아이의 어미가 있는지 잠시 지켜본 뒤, 냥덕 친구의 조언을 구해 그 아이를 집으로 들여 보살피기 시작했다.



베이스냥

   무려 츤매력이 넘치는 이 분이시다. 다행히 접근은 허락하시지만 안고있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가차없이 깨물어댄다. 새벽에는 슬슬 우다다다를 시작하셨다. 집의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을 미친듯이 오간다. 지금도 혼자 자취하는 내가 감당하기 힘들거라며 입양보내라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거세지만, 저 고혹적인 아이에게 이미 마음을 뺏긴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가끔 만져주면 가만히 졸며 골골거리는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감성, 동물과의 얽힌 인연의 기억이 또 한 명의 냥덕을 양성해 낸 셈이다.
  냥덕들의 경우 대체로 주종개념이 없거나 뒤바뀌어있어 '집사'라는 용어로 불린다. 나는 여타 분들의 덕력에 1할도 미치지 못하지만, 정말.. 길고양이 다 챙겨주며 좋은 것은 모두 고냥님께 조공으로 바치는 무서운 분들이 많더라.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집사를 대량양성하여 자신들의 세계를 무한확장하고 있는, 언젠가는 지구정복이 목표가 아닐까 싶은 고냥님들이 한편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