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합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지만, 오랫동안 준비해 짐을 단단히 꾸리고 떠나는 긴 여행이든 변덕에 가까운 근교로의 외출이든간에, ‘일상에서 벗어난다’ 는 것은 엄청난 마력을 지니고 있는데다 탈일상(脫日常)이 가져다주는 두근거림과 설렘, 그리고 여유를 통해 느끼는 해방감이 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변함없이 돌아가는 하루하루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일에 치여 지치고 고단할 때, 하는 일이 잘 안 풀려 답답할 때 여행을 꿈꾸나봅니다.
여러분들에겐 어떤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습니까? 전 참 아쉽게도 지치고 고단할 때 떠올릴만한 여행의 추억이 거의 없습니다. 삼십년을 살아오면서 바다를 딱 두 번 보았고, 산의 정상을 밟아본 적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나마 떠오르는게 3년 전, 두 번째로 바다를 보았을 때의 얘기네요. 적을 두고 있던 동호회에서 여행을 가자는 제의가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막내들은 중학생이었는데 어느덧 그 아이들과 술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함께 잔을 기울이게 되었을 정도로 오래 된 모임이지만, 여행을 함께 가는 것은 처음이었던지라 모두의 기대가 컸었지요. 칠월 초라 조금 추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름에 떠나는 여행이니 바다로 가자는 제안에 ‘오빠 저 꼭 갈게요. 빼놓고 가면 안돼요!’ 서부터 ‘내가 없는 바다는 오라버니들에게 아무런 감흥이 없을테니 함께 가 주겠소’ 등등, 수많은 긍정적인 반응도 돌아왔더랬지요.
드디어 여행 당일. 선발대는 기차로 먼저 가서 바다를 데워놓고(?) 있을테니 후발대는 알아서 따라오라 말해두고서 저와 동생 두 녀석이 먼저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바다를 보는 저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신이 나 있었고, 함께 가는 녀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시간동안 내도록 무어가 그리 신나는지 허허허허 웃기에 바빴으니 말입니다. 부산에서 따로 출발한 녀석들까지 총 다섯 명이 역에서 만나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눈은 내내 바다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고, 짐을 풀어놓자마자 신나게 달려가 바다로 뛰어들어 오만 난리를 떨었더랬습니다. 여섯시 즈음 도착한다던 후발대와 함께 놀면 정말 매우 즐겁겠구나 라며 남자 다섯은 그렇게 바다를 데우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쯤 바다를 데우는데 매진하느라 체력을 빼앗긴 남자 다섯은 후발대의 도착을 기다리며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사실 후발대를 기다린건 더 많은 사람이 온다는 것도 있었지만 ‘고기와 술을 싣고 온다’ 는 점도 간과하지 않았던 남자 다섯은 샤워재계를 마친 상태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기린화(麒麟化)되어가고 있었지요. 한참 시간이 흘러 후발대가 도착했을 때, 굶주린 남자 다섯은 고기와 술을 챙기느라 그만 후발대마저 남자 세 명의 구성으로, 즉 이번 여행의 테마는 ‘싸나이 울리기’ 였음을 깨닫는 것이 늦어버리고 맙니다. 고기를 구우며 상을 세팅하고 나서야 모두 그 사실을 깨닫고, 그 직후 잠깐의 정적과 ‘괘... 괜찮아! 남자만 있으니까 편하지 뭐.........’ 라는 누군가의 공허한 외침만이 방안을 맴돌았을 때의 가슴 시림은, 참 말로 설명하기 꽁기꽁기했더랬습니다.
길게 말하면 계속 꽁기꽁기해질 우려가 있어 싸나이 울리기를 테마로 한 여행의 이후 여정을 짧게 정리하자면, 여행의 밤바다 백사장에 남자 여덟 명이 나란히 앉아 하늘로 불꽃을 쏘아올리고, 그나마도 불꽃이라고 사온 것들의 1/3이 사실은 불꽃이 아닌 폭죽으로 밝혀져 한 명이 모래에 묻히고, 그래도 괜찮다며 여덟 명이 바지만 입고 둘러앉아 부어라 마셔라하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온다고 해놓고서 안 온 몹쓸 것들을 응징하기 위한 ‘고기가 맛난단다’ 등의 대사로 점철된 동영상을 찍고, 다음 날 대구로 돌아가 남자 여덟이서 술먹이기 원카드 게임(!)을 하고, 그나마도 안 먹겠다며 서로 죽자고 매달리고, 패자가 정해졌을 때 일곱 명이 기립 박수를 치다 헤어진... 참 슬프디 슬픈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행이 제게 가져다 준 의미가 컸음을, 기억에 많이 남았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나중에 또 이런 기회가 생기거든 이렇게 되도록 하지는 말자’ 라는 다짐을 남겨준 것도 사실이지만; 아랫 사진처럼 정말 활~짝 웃게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색다름과 낯섦이 가져다주는 웃음이 있기에, 여행은 우리에게 늘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지만 실제론 그게 쉽지 않은 위치에서 계속 우리를 우러러보게 만드는 것은 아닐는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는 밤입니다. 저 때의 흐뭇한 웃음을 그리며, 혼자 씨익 웃어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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