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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01001 / 처음] 당신 기억 속 처음의 책은 무엇인가요? by 김교주


아마 수많은 이들의 첫 책은 모르긴 해도 <우리 아이 첫 한글>, 내지는 <그림으로 배워요> 류의 제목이 붙은 유아교육용 서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 글의 제목에서처럼 “당신이 ‘기억하는’ 첫 번째 책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최초의 책은 앙투안 마리 로제 드 생텍쥐베리(이 아저씨 이름이 이렇게 길다는 사실, 알고 있었던 사람?)의 <어린 왕자>이며 이 책은 뇌리에 각인된 첫 번째 책일 뿐 아니라 2010년의 오늘까지도 내 생애 최고의 책이라는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린왕자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생텍쥐페리 (인디고,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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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생텍쥐베리는 비행사라는 또 하나의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어린 왕자>는 바로 그 직업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1943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현재까지 약 180여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영화 및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고 숱한 패러디와 후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토록 이 한 권의 책이 각광받고 있는 것일까?

 

문학에 대한 취향은 누가 옳고 누구는 그르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는 생텍쥐베리 찬가를 부를 생각도 없고 <어린 왕자>가 세기의 명작이므로 이 책을 읽지 않은 자 내 글을 읽을 자격이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발휘할 생각도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야말로 정말 만일, 그럴 리야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아직 <어린 왕자>를 읽지 않았다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당신을 따라다니며 꼭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어린 왕자>를 읽은 것은 일곱 살 때, 셋째 이모 댁에 놀러가서였다. 서열 5위, 6위인 사촌 오빠들이 남자들의 세계에 빠져 있는 동안 서열 9위의 나는 다락방에서 소복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잠들어 있던 이 책을 마치 보물찾기에서 1등 상을 탄 꼬맹이의 기분으로 찾아냈고 이 책을 모두 읽은 다음 결심했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반드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래서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그런 글을 쓰겠다고. <어린 왕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꿈은 어디든 다른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왕자가 소혹성 325호부터 330호에 이르기까지 여섯 개의 소혹성들을 찾아다니며 만난 그야말로 이상야릇한 어른들에 대해서는 잊기로 하자. 대신 그가 마침내 지구에 도착했을 때 마주친 이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살아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찾아온 별에서 만난 최초의 생명은 죽음을 몰고 다니는 뱀이었다. 이 아이러니는 독사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는 어린 왕자의 무지와 맞물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이라고 믿었던 꽃이 수천 송이나 피어있는 정원에 이르러 지독한 상실감으로 눈물을 터뜨리는 어린 왕자를 보며 사랑에 빠져 있다가 문득 발견한 내 사람의 평범함에 대한 혼돈과 절망으로 무릎이 꺾이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말은 오해의 근원이므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자기를 길들여 달라는 여우의 말에서 깊은 삶의 지혜를 성찰하게 되기도 된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이들을 만남으로 인해 자신이 소행성에 남겨두고 온 장미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깨닫고 길고 어려운 길을 돌아가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아저씨....... 내 꽃말인데....... 나는 그 꽃에 책임이 있어! 더구나 그 꽃은 몹시 연약하거든! 몹시도 순진하고, 별것도 아닌 네 개의 가시를 가지고 외부 세계에 대해 자기 몸을 방어하려 하고......."

나는 더 이상 서있을 수가 없어서 앉았다.

"자....... 이제 다 끝났어......."

그는 조금 망설이더니 다시 일어섰다.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나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발목에서 노오란 한 줄기 빛이 반짝했을 뿐이었다. 그는 한순간 그대로 서있었다. 그는 소리치지 않았다. 나무가 쓰러지듯, 그는 천천히 쓰러졌다. 모래 때문에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

 

'이제 다 끝났다'는 그의 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의미의 끝이 아닌, 장미를 떠나서 있었던 그의 방황의 종결을 의미한다. 연약하고 순진한 자신의 꽃을 위하여, 그리고 그 꽃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그는 방황을 마치고 꽃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소리 내지 않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가 돌아갔을 때, 그의 장미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니면, 긴 기다림에 지쳐 자신을 닮은 다른 장미들을 남긴 채 이미 자취를 감추었을까. 그것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꿈꾸게 된다. 이들이 부디 아름다운 재회를 이루었기를.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는 진리를 생텍쥐베리는 결말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가르쳐 준 셈이다.

 

결국 이 책은 사랑하는 이를 어딘가에 남겨두고 홀로 먼 길을 떠난 사람들에게 주는 지침서이자 어린 왕자의 성장기다. 그리고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책을 내 생애 최초의 책으로 기억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 사는 행운아다. 아마도 당신의 책장 어딘가에 분명히 꽂혀 있을 이 책을 오늘 다시 한 번 꺼내어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창밖의 기온은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져갈지언정 당신의 마음만큼은 사막 가운데 감춰진 오아시스처럼,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되리라고 약속할 수 있다.


팝업북 <어린 왕자>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화질이 개판이긴 하지만.....;


덧: 이 공간은 곰 한 마리, 영계 한 마리, 그리고 자칭 꽃미남 한 사람이 함께 꾸려 나가는 팀블로그입니다. 2010년 1월, 그 첫 발걸음을 딛는 글을 쓰게 되어 부담스러움과 동시에 다른 두 사람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겹칩니다. 부디 이 곳에 모인 세 사람이 초심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교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많이 응원해주시고, 지켜봐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