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년

[201001 / 처음] 나의 첫 사랑노래 by 빛바랜편지

  나의 부모님은 나를 철저한 기독교 교리 아래에서 양육하셨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나는 자연히 대중문화의 수용에 있어서도 매우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내게 대중가요는 대체로 세속적이고 질이 낮게 들렸고, 관심도 가지 않으며 즐겨 듣지도 않던 것이었다. 특히, 지겹게도 만나고 헤어지며 웃고 또 우는 그런 사랑노래를 부르는 어린 가수들은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기까지 했다.

 좀 더 자란 고등학교 시절엔 기숙사 생활을 했다. 살던 곳이 낙후된 중소도시였지만 교육열은 강남지역 못지 않았기 때문에, 기숙사생들은 저녁 일곱시에서 자정까지 독서실형의 자습실에서 내내 공부해야 했다. 쉬는 시간에는 친한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거나 수다를 떨고, 공부시간엔 몰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것이 낙의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자연스레 음악을 두루 접하게 되었지만, 그 때에도 국내가수의 사랑노래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쉬는 시간 친구의 책장을 둘러보다 우연히 박정현의 라이브앨범(Op.4 Concert Project 4th Movement The

Album
) 테이프를 발견했다. 박정현의 목소리나 노래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앨범 재킷사진의 단아하고 여성스러운, 하지만 신비스럽고 힘이 내재된 듯한 그녀의 모습 끌려 친구에게 겨우 테입을 빌렸고, 재생버튼을 눌렀다. 물론 곧 들려올 음악의 설렘에 재킷사진의 이미지를 잔뜩 이입한 채로.

  상상했던 이미지처럼,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쳤다. 하지만 그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꽉 찬 편곡과 연주, 라이브앨범 특유의 공간감 위에서 자유자재로 노니는 목소리에 반하고 말았다. 어찌 사람의 목소리가 저리 섬세하면서도 쭉쭉 뻗을 수 있는지 감탄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내가 여자가 되어 그녀의 시원스런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했다.

"멜로디는 첫 만남에 호감을 갖게 하는 육체적 외면과 같아요. 섹스와 같죠. 하지만 가사는 정신이나 영혼이예요. 그를 알아가는 과정을 느끼며 그 사람 자체에 대해 알게 해주는 것들이죠."
- 영화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 중에서.

 그리고 가사. 학창시절엔 공부나 열심히 해야지 연애같은 걸 하면 안된다고 믿고 있었으며, 연애를 할 기회조차 마땅히 없었던 나였다. 친한 이성친구조차 없었다. 그런 내게 소녀취향적인 사랑노래가 와닿을 리 만무였다. 하지만 당시 강렬한 환상을 하나 갖고 있었으니, 나를 소중하게 여겨 주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서로를 웃게하고 발전시키는 이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노랫말 ㅡ물론 작사자는 따로 있는 경우가 많지만ㅡ 은 같은 이야기라도 더 정갈하고 아기자기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예쁜 생각'으로 채워져 있어 내 환상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비록 누군가를 뜨겁게 좋아해 본 일은 없지만 그런 사람이 생긴다면 '나도 저렇게 순수하고 예쁘게 좋아해야지, 또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준다면 저렇게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훌륭한 멜로디와 편곡, 섬세하고도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덧입은 그녀의 예쁜 노랫말에 홀려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녀의 앨범을 꾸준히 듣게 되었다. 막연한 짝사랑에 빠진다면 <Plastic Flower>의 가사처럼 홀로 전전긍긍하겠지, 거절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크겠지. 성격 좋은 친한 이성이 생겼으나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나면 어떻게 될까. 헤어지면 그 친구를 다시는 볼 수 없을테니 <친구처럼>의 노랫말과 같이 옆에 오래도록 남아주는 게 좋은걸까. 내 마음이 너무 커져버린다면 헤어짐의 두려움마저 껴안은 채 <P.S. I Love You>와 같이 고백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다. 학교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아이는 반달눈을 가졌고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나는 한 눈에 그 아이가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서로 많은 속이야기를 나누었다. 과도 달랐지만 교양과목도 같이 듣기로 했다. 그러면서 점점 이 아이가 내 여자친구가 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3, 4월이 지나면 괜찮은 애들은 모두 낚아간다는 선배의 조언을 뒤로 하고서 이렇게 성격 좋은 아이는 친구로 계속 두는게 더 좋을거야, 헤어지면 이 좋은 친구 잃게 되잖아, 라는 생각으로 외면하며 내 감정을 꾹꾹 누르고 지냈다.

 쌓여가던 감정을 더 누르지 못해 내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직후, 그 아이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나는 뜨거운 마음을 누르면서 그 아이와 많은 수업을 들어야 했고, 그 아이는 친구로 규정지은 내게 연애상담까지 했다. 듣기 힘들지만 우린 친구사이이므로 참아야 했다. 친구라는 명목으로 밥 한 끼 씩도 할 수 있었음이 기뻤다. 이 동안에는 박정현의 <친구처럼>을 미친듯이 무한반복재생감상청취하며 살았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낸 뒤, 그 아이는 잔뜩 우울해져서는 이별했다고, 내게 말했다. 그 우울함을 달래주려 옆에서 도와주던 나는 이번엔 내가 감싸주어야겠다, 이번 기회는 놓칠 수 없다 생각되어 고백을 감행한다. 고백은 성공했지만 헤어짐이 정리가 되지 않았던 그녀의 감정, 1년동안 옆에서 지켜만 보며 묵히고 묵혀온 나의 격한 감정이 만나 관계는 두 달도 되지 않아 끝을 보게 된다.

 연애라는 것이 누구의 조언을 받는다고 썩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내 첫 연애의 과정에서 박정현의 노래가 크게 작용했다고 기억한다. 내가 꿈꾸어왔던 연애의 환상, 그리고 그 연애에 대한 자세와 결정은 그녀의 노래대로 행동하다시피 했다.

  사람과 세월을 조금 겪으면서 이성친구관과 연애관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박정현의 노래와 같이 소녀취향적이며 감정이 폭발하는 노래보다는 조원선의 노래처럼 원숙하면서 지극히 담담한 노래를 더 좋아한다. 새내기 시절만큼 순정파이지도 않고 친구라는 명목으로 시행하는 어장관리를 증오한다.

 많은 것이 변했다고 하더라도 박정현의 노래는 내 학창시절과 새내기 연애초보 시절의 큰 부분을 차지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풋풋하고 모든 것이 서툴었던 시절을 떠올리면 난 아직도 그녀의 노래부터 떠오른다.

박정현의 노래는 내 첫 사랑노래이자 첫사랑 노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