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도록 고민하고 책을 골랐다. 친구라는 말이 주는 알 수 없는 향수에 이끌려 폭풍의 언덕이니 셜록홈즈,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책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제밤 서가를 다시 한 번 돌아보다가 친구라는 말에 갇혀 있던 나를. 친구라는 표제어를 우정과 혼동하고 있었던 나를 알았다.
미리 말하지만, 이 책은 결코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오히라 미쓰요의 삶 속에서 친구라는 존재들이 어떻게 역할했는지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
이런 류의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책 또한 자전적 에세이의 기본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다. 주인공이 시련을 겪고, 일탈을 경험하고, 깨달음을 통해 노력하고 정진한 끝에 성공하게 된다는 지루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번역에 분노한 나머지(어쩌면 번역이 아니라 원작자 오히라 미쓰요의 문장력 때문일 수도 있다;) 책을 집어던지고 싶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두기로 한다. ... (사실 이건 내가 그랬다는 거고.)
대부분 친구란 군신이나 곰이 이야기한 것처럼 따뜻한 기억을 되살리게 해주는 존재다. 우리는 또래집단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일상을 공유하며 그들과 함께 인생의 페이지를 채워나간다. 특히나 학창시절, 친구란 그야말로 함께 있으면 두려울 게 없는 이 아닌가. 그뿐이랴, 오래 두고 사귄 벗이라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가.
그러나 이 책은, 그리고 오히라 미쓰요는 그 허상을 남김없이 아낌없이 깨부수고 짓밟는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보여주던 미소 뒤에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잔인한 외면과 질시가 숨어 있으며, 때로는 그것이 도를 넘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이를 털어놓으며 그녀는 자신의 중학 친구들에 대한 격한 분노를 굳이 숨기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오히려 그러한 증오와 분노가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또 다른 힘이 되어주었음 역시 부인하지 않는 것이 오히라 미쓰요의 자세다. 일본이라는 나라, 그 나라의 문화적 현실 속에서 탄생한 이지메의 피해자였던 자신의 어린시절을 고백하듯, 혹은 절규하듯 뱉어내는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이름 모를 불편함이 가슴을 헤집는다. 친구라는 말의 유령됨을 깨닫게 되어서인지, 그녀의 문장력이 형편없어서인지.
다음달 주제 선정자는 아마도 군신이지? 훗, 기대하겠소~
'201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12 / 연극] 봐요 지금, 거울 속의 당신을. by 김교주 (4) | 2010.12.16 |
---|---|
[201011 / 친구] 벗 by 빛바랜편지 (0) | 2010.11.25 |
[201011 / 친구] 그리워하네. by 란테곰 (0) | 2010.11.17 |
[201011 / 친구] 그리워라, 그 시절 by 에일레스 (2) | 2010.11.14 |
[201010 / 가을] 올 가을엔 by 빛바랜편지 (2) | 2010.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