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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01010 / 가을] 올 가을엔 by 빛바랜편지

 주제를 제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신(軍神)께 전갈이 왔다. 주제가 쉽고 흔하다 하더라도 글쓰는 일은 결코 더 쉬워지지 않았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통감했다. 1년 중 가장 많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색을 하는 계절이건만, 그만큼 많이 내어뱉었기에 글을 쓸 거리가 도통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뭘 쓸까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며 가을이 농익는다 싶더니 벌써 춥다. 정말 우리나라도 건기와 우기의 2계절로 가나보다. 이런 급격한 환절기는 솔로들에게 더 자극이 될 뿐일진대.

 내 가을엔 항상 없었다. 그렇다, 애인이 없었다.



 스무살의 가을, 당시까지는 명맥을 유지하던 '세이클럽' 채팅방에서 우연히 동향이며 동갑인 처자를 만났다. 이래저래 연락하며 가까워졌고, 몇번의 만남을 통해 더욱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당시 사진동아리에 몸담았던 나는, 정성스레 그녀의 사진을 직접 찍고 현상 및 인화까지 마쳐서 갖다주기도 했다.

 고백을 마음먹었던 결전의 날, 우리는 연극을 보았다. 연극은 재미있었고, 일정은 순조로웠다. 연극을 보고 나서 화장실에 다녀온 후 우리는 연극에 대해서 간단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녀의 표정이 뭔가 모르게 일그러져 있다.

 기억을 되짚어본다. 조금 전 화장실에서 코를 풀었지. 물에다 풀었으니 코가 축축할 수 밖에. 하지만 확인해볼까?

...

 내 왼쪽 콧구멍의 입구엔 고체와 액체의 중간상태 형상의 거대한 물체가 안착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재빨리 수습했지만 이미 늦었을 수 밖에.

 연극이 끝난 후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채 정적만이 남아있었다. 신중히 고른 카페로 이동해 승부를 보려고 했건만, 바쁘다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연락이 닿질 않았다.



 스물 한살의 가을, 교회의 성경공부를 하는 조모임에 새 인물이 들어왔다. 당시 우리 조엔 조장과 나 둘 뿐이었기 때문에 나 외의 유일은 조원이 들어온 것이다. 스물 한살의 나에게 스물 넷의 그녀는 원숙미와 매력이 넘쳤다. 워낙 주위사람을 잘 챙겨주는 성격에 집도 가까웠던 우리는 급격히 친해졌다. 퇴근 후 거의 매일 저녁, 우리는 근처 중랑천에서 산책을 빙자한 데이트를 하곤 했다.

 충분히 가까워짐을 느낀 내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부담을 느꼈는지 연락이 안되기 시작하더라. 며칠 뒤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아직도 기억하는, 건대 엔젤리너스 2층 첫테이블에서 나는 그녀에게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의 질문을 받게 된다. 물론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자, 예상대로 거절의 뜻을 받게 된다.

 '넌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으며...'

 후에 지인을 통해 알게된 사실. 그녀는 나에게 거절의 뜻을 전하려고 만나기 이틀 전에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몇 달 뒤에는 나를 거절한 건대 엔젤리너스 2층 첫번째 테이블에서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스물 두살의 가을과 스물 세살의 가을엔 군인이었다.



 그리고, 지금 스물 네살의 가을이다.



 올 가을엔 사랑할 수 있을까?
 이젠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벌써 추운걸 보니 가을은 이미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묻지 말아요 내 나이는 묻지 말아요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 

나 홀로 가는 길은 너무 쓸쓸해
너무 쓸쓸해

창밖엔 눈물짓는 나를 닮은 단풍잎 하나


가을은 소리 없이  본체만체 흘러만 가는데
애타게 떠오르는  떠나간 그리운 사람


그래도 다시 언젠가는 사랑을 할거야
사랑할거야

울지 말아요 오늘밤만은 울지 말아요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그대가 없이 가는 길은 쓸쓸해
너무 쓸쓸해

달빛은 화사하게 겨울 가로등 불빛을 받아


오늘도 소리 없이 비쳐만 주는데
변함 없이

애타게 떠오르는 떠나간 그리운 사람


그래도 다시 언젠가는 사랑을 할거야
사랑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