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년

[201011 / 친구] 그리워라, 그 시절 by 에일레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딜 가든 '무시당하지 않을만한' 나이가 되어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한 것도 벌써 5년차가 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건 벌써 10년이 지났다. (이 부분에선 울자. ㅠㅠ)

나이를 먹으면서 확실히 느낀 것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람 사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학교 다닐 때 만나던 친구들만큼 가까워지기 어렵기 마련이다. 일단 '친구'라는 말 자체를, 나이 먹어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잘 안 붙이지 않나.

그래서 '친구'라는 주제를 받고 딱 떠오른 작품이 있었다. 여고를 다닌 사람이라면, 그리고 여고를 다니지 않았더라도 고등학교라는 곳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만화'.
이빈 작가의 [걸스(Girls)] 라는 작품이다.

걸스1
카테고리 만화 > 순정만화
지은이 이빈 (서울문화사, 2010년)
상세보기


[걸스]에는 정말 학교다니면서 한번쯤 봤을 법한 여러 친구들의 군상이 모여있다. 공부 잘하고 순진한 애,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애, 공부는 못해도 잘놀고 진짜 웃기는 애, 공주병 걸린 애, 돈 없다고 맨날 얻어먹으면서 자기는 브랜드 옷 사고 살거 다 사는 애 등등.
그런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놀고, 웃음도 눈물도 함께 나누는 모습들을 [걸스]는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수학여행 에피소드 중에서 춤추고 노는 아이들)


[걸스]의 최대 장점은 무엇보다도, 정말 '웃기다'는 점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뻔뻔스러움'인 람바다(학년 초 진학조사에서 '람바다 대학 람바다 과'를 가겠다고 해서 붙은 별명. 본명은 신혜정)와 카리스마 넘치는 부반장이면서 '재미추구'를 가치관으로 삼는 김화정, 험악한 외모와 달리 여린 마음을 가졌지만 가끔 뒷통수치는 행동을 보여주는 무라이(머리모양이 '사무라이'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 본명은 김미영),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전학온 왕공주(본명은 박수지)가 펼치는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포복절도'하게 웃기다. 이름도 모르는 뮤지션 팬사인회에 가서 허벅지에 사인을 받거나 뽀뽀해달라고 요구하질 않나, 수학여행 가서 수박 서리를 해와서는 칼도 없이 주먹으로 깨 먹질 않나.. 물론 만화적인 과장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익히 겪어본 일들이거나 있을법한 일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총각선생님 괴롭히기에 대한 에피소드)


나는 고등학교 때 꽤 평범한 학생이었다. 성적도 중상위권이었고, 외모도 당연히 -_- 튀지 않았고, 그다지 잘 노는 성격도 아니었고, 반장이나 부반장도 아니었다. (아, 학습부장 뭐 그런걸 한 적은 있다.. -_-)

그런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 '진짜' 재밌었던 기억 몇 가지가 있다. 쉬는 시간 땡 치자마자 달려나가 떡볶이를 사갖고 와서 정신없이 먹어치우던 기억(쉬는 시간이 10분이었는데 사오고 다 먹고 치웠는데도 시간이 남았었다!! 위대한 여고생들이여-), 야자시간에 몰래 빠져나가 학교 앞 교통공원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고 놀던 기억(이건 몇번 하다 결국 걸려서 일주일 넘게 기합받고 반성문쓰고 고생했었다;;), 야자시간에 과학실로 도망가서 친구들이랑 수다떨고- 대학생이던 친구 남자친구랑 통화하면서 킥킥대던 기억(내가 과학실 관리 담당이라서 열쇠를 갖고 있었다 -_-*), 미술선생님을 좋아해서 우리끼리 팬클럽을 만들었던 기억, 소풍가서 사진찍고 놀던 기억 등등.

이런 것들은 정말,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기억들이었다. 내가 가진, 그리고 누구나 가졌을 법한 그런 기억들의 정서를 [걸스]는 정확히 짚어 보여준다. 그것이 [걸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반장의 말: "우린 모두 친구야. 친구들이 있으니까 학교가 즐거운거야.")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다 연락하고 지내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만나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결혼한 친구들도 있고, 다음달이면 아이 엄마가 되는 친구도 있다. 비교적 자주 만나서 직장생활의 고달픔을 나누는 친구도 있고, 다음주에 몇년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도 있다.

지금은 다들 다른 생활을 하고 있고, 일상의 공통점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친구'일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좋았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아- 그립다, 그 시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의 1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