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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01011 / 친구] 그리워하네. by 란테곰


사실, 얼마전 블로그 이웃들과 함께 하는 공동포스팅에서 '내 생애 봄날은' 이라는 제목으로 친구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지금 얘기하려 하는 것도 딱 그 때의 친구들과 함께 할 적의 얘기를 하려 하니, 그 글을 기초로 해 살을 덧대는 방식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그러므로, 그 글을 미리 한 번 읽어주는 것이 이 글의 이해를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용인에서 대구로 내려온 첫 해. 창문 한 쪽으로 머리 하나가 겨우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작은 창문과 드르르륵이 아닌 끼이이익 소리가 나는 철제 미닫이 문 하나로 구성된 컨테이너 방에서 첫 여름을 나느라 무척이나 고생을 했더랬다. 유월, 칠월, 팔월. 석 달 사이에 선풍기 세 대의 모터가 탔고, 친구가 보내준 라면을 아침 일곱 시에 끓여먹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땀폭풍이 불어와 반드시 샤워를 해야 했었다. 너무나도 후덥지근해 쉬이 잠들 수 없어 늘 새벽이 되어야 겨우 잠이 들곤 했었고, 차라리 밖에서 자자며 집 앞 공원에서 눈을 붙이다 순찰하던 경찰에게 불심검문을 당하기도 일쑤였다. 어디 고생을 여름에만 했으랴. 비루함의 극치를 달리던 첫 겨울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는데, 집 앞 수퍼에서 커다란 땅콩과자와 오란씨를 각각 천 원씩에 구입해 그것으로 세 명이 하루 끼니를 때우곤 했더랬다.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아지자 간간히 놀러오는 손님들의 주머니를 털기 일쑤였어서, 집 바로 옆 자그마한 공원 끄트머리에서 아주머니가 팔던 개당 백원짜리 똥집 튀김 열 개를 입장료로 받는(!) 파렴치의 끝을 보이기도 했었다. 기름을 넣지 못해 보일러를 돌리지 못한 냉골 방 한가운데 놓인 전기장판 위에서 네다섯 명이 바싹 붙어 잠을 청하고 - 최고 기록은 여덟명이었다. 전기장판을 방 가운데 두고 장판 쪽으로 다리를 모은 채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깼을 적에 밤새 엉킨 서로의 다리를 푸느라 한바탕 생난리였다. - , 그 때만 해도 천원이었던 팔팔골드를 필터 끝까지 피우고도 모자라 누군가가 반만 피우고 남겨(?)놓은 꽁초를 몰래 들고 나가 피우기도 하는 둥 말 그대로 궁상의 끝을 보였다. 전보다 조금씩 살림이 나아지고, 또 전보다 조금씩 환경이 좋아지는 매년을 반복해 쌓아올린 6년동안의 대구 생활 중 가장 눈물 콧물 줄줄 나는 진상 스토오리가 아닐 수 없는 1년이었다.


참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시련이 가득한 궁상 라이프를 살아가는 와중에도 우린 하고 싶은 일을 거의 다 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오락실에서 아이들과 만나 놀았고, 그 때 완전 유행하던 칼머리 - HOT의 그 머리를 생각하면 된다. 더블커트, 속상고라고도 부르기도 했다. - 를 유지하면서 노랗고 빨갛게 머리를 물들이기도 했으며, 오락할 돈조차 모자란 아이들을 매 달 한 번씩 모아 함께 놀고 밥을 먹이고 노래방까지 가 즐겁게 놀기도 했고, 심지어는 서울로 원정 배틀을 가기도 했었으니까. 그 덥고 추운 방에서 나와 함께 지내는 무리는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한다기보단 원활한 정모 유지와 새로운 기술 연습을 위해 알바를 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때였으므로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여기저기서 간간히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어떻게든 어떻게든 살아가는 군상을 보며, 또 그 무리 안에 포함된 나 자신을 보며 '사람이 참 무섭구나'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이곤 했었다. 과자로 하루 한 끼를 때우는 와중에도 플레이 영상을 찍어 그걸 보며 고칠 부분을 찾으면 좀 더 잘 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70만원짜리 캠코더를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또 그걸 실행으로 옮길 정도였으니 두 말 할 나위가 없겠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가 미쳐있던 게임은 점점 오락실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나이를 먹어가며 먹고 사는 문제로 연락이 뜸해지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해 한 때 400명에 육박했던 동료 중 아직도 연락이 닿는 사람은 열 명 남짓, 또 그 사람들과 각자 연락이 되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얼추 스무 명 정도만 남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내게 소중하다. 무언가에 함께 미쳐있던 사람들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걸까. 이미 내겐 가족인 그들이 그립다. 무언가에 미쳐 앞뒤가리지 않고 달려들 수 있는 날이 다시 오진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