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모텔 특유의 분위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방 안. 머리맡에 놓인 스탠드의 불빛으로 침대의 주위를 밝혀 이질적인 분위기가 연출된 그 공간에서 난 지독한 패배감을 느끼며 그녀의 안을 열심히 휘젓고 있었지만,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다른 때에 비해 훨씬 더 흥분한 그녀는 내 등에 손톱 자욱을 남기며 쾌락의 파도를 타느라 여념이 없었다. 허리를 흔드는 것, 물고 빨고 핥는 것, 어루만지는 것 하나하나에 추임새를 넣듯 강한 신음을 토해내는 그녀. 오늘따라 유독 그녀의 교성이 크고 간드러지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꿈꾸던 섹스를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며 난 그녀의 등에 사정했다.
4년 전. 그녀의 양 다리 사이에 머리를 묻고 한참을 물고 빨며 그녀의 성기를 적신 뒤 손가락을 밀어 넣어 손가락 두 마디 쯤에 위치한 자그마한 돌기를 한참이나 자극하고 난 뒤에야 내 위에 올라타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내 귀에 달뜬 숨결을 불어넣던 그녀가 내게 끈적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해보고 싶었던 섹스 있어? 꼭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것이 있다면 어떤 거?"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질문에 바짝 힘이 들어가자 몸 안에서 내 성기의 움직임을 느낀 듯 움찔하더니, 내 몸에 붙어있던 상체를 살짝 떼어내곤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보란 듯이 허리를 빙글빙글 돌리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난 평소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애널 섹스에 관한 얘기를 했었다. 섹스 중 간혹 항문에 밀어 넣곤 했던 손가락을 통해 그녀의 회음부가 전해주는 강렬한 경련을 느끼며 흥분을 했었다는 것부터, 그녀의 모든 구멍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정복욕을 실제로 느껴보고 싶다는 것까지 모두 다. 끊임없이 허리를 돌리며 교성을 내뱉는 와중에도 내 얘기를 놓치지 않은 그녀는 내게 언젠가 꼭 한 번 애널 섹스를 하게 해 주겠노라는 얘길 해주었고, 이후 그녀가 내게 말해준 '자신이 원하는 섹스' 얘기를 듣자마자 우린 격하게 끌어안은 채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 집중했다.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다음 날, 어제와 비슷한 섹스 타임에 내 성기와 그녀의 항문은 첫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흥분으로 흘러넘친 애액과 내 타액으로 범벅이 된 그녀의 항문을 살짝, 가볍게 문지르다 천천히 비집고 들어간 성기를 통해 느껴지는 색다른 느낌은 날 완전히 흥분시켰다. 질 안의 뜨겁고도 끈적한 느낌과는 사뭇 다른 삽입감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쾌감은 참으로 달콤했다. 난 이내 그 달콤함에 푹 빠져들었고, 터부를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 가져다주는 해방감에 사로잡힌 난 금세 그녀의 항문 안에서 절정에 다다르고야 말았다. 너무나도 빠른 사정에 그녀는 기가 차 했고, 나는 꿈이 이루어졌다는 만족감을 느끼면서도 겉으론 멋쩍어 했다. 아니, 키스를 나누다 던진 "처음에는 다 그래" 라는 그녀의 말은 스무 살 적 첫 섹스에서의 너무나도 빠른 사정 이후에 들었던 말과 같은 무게를 가졌기에 난 억지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기도 했다.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이럴 줄 알았으면 칙칙이라도 뿌릴 걸 그랬다는 농을 섞어가면서.
그녀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반 년 전. 생각 차이가 우리를 순식간에 갈라놓은 지도 삼 년이 조금 넘은 후였다. 소주병을 가운데 놓고 앉아 그 동안 어찌 지냈는지, 일은 잘 되어가는 지 등 '전혀 궁금하지 않은 얘기'를 오랫동안 나누다 동난 소주병의 시체가 세 구를 넘어갈 때 즈음 얘기는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에 관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 두 명을 만났지만 혼자가 된 지 꽤 오래 된 나와는 달리 그녀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곧 결혼을 할 생각이라면서 애인 자랑을 늘어놓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난 잔을 거푸 비웠다.
서너 시간쯤 지났나보다. 술이 조금 과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넌 내 꿈을 이루게 해 준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게 될 정도로 취했을 줄은 몰랐다. 나도 네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는 말을 뱉을 정도로 자제력이 없어졌을 줄도 몰랐고. 말을 뱉자마자 화끈, 얼굴이 달아올라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담배를 물었다. ‘다 지나간 얘길 꺼낼 정도로 궁한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음 어쩌나 싶어 속으로 혀를 차며 소주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으려는데, 왜 혼자 마시냐며 자기 잔을 들어 잔을 비우는 그녀의 눈빛이 아까와는 살짝 달라져 있다는 걸 난 알아채지 못한 채 술잔을 비워갔다.
머리맡에서 비쳐오는 환한 빛이 눈부셨다. 더듬더듬 안경을 찾아 끼고 나서야 누런 벽지에 이해하기 힘든 꽃무늬가 새겨진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한참을 넋을 놓은 채 몽환적이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꽃벽지를 바라보고 나서야 겨우 내가 그닥 좋지 않은 시설의 모텔에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서는 몸을 일으키려던 때, 이 넓지도 좁지도 않은 방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침대 끝에서 그녀가 벌거벗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본 그녀의 나신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더운 여름,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그녀의 길쭉하니 시원시원한 다리에서 시작해 부드럽게 솟아오른 엉덩이의 완만한 곡선을 잘록하니 아름다운 선으로 마무리 지은 허리를 지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름다운 젖무덤를 거쳐 움푹 들어가 눈길을 사로잡는 쇄골을 타고 올라가 하얗고 곧게 뻗은 목까지. 어른어른한 불빛으로 마감된 그녀의 몸길은 세상 어디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아름다웠고, 그 길을 눈으로 걷는 동안 내 성기는 본능적으로 단단해져 있었다.
스윽, 천천히 다가와 잔뜩 골이 난 내 성기에 입을 맞추고 천천히 혀를 놀리기 시작한 그녀. 갑자기 찾아온 격렬한 쾌감에 찌리릿 몸이 떨렸다. 손을 뻗어 그녀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다 조심스레 접근해보니 이미 잔뜩 젖어있는 그녀의 성기. 그녀의 몸을 돌려 내 얼굴 앞에 그녀의 성기가 자리 잡게끔 하고선 살짝 도드라진 클리토리스를 문지르자 곧 그녀가 애무하고 있던 내 성기에 그녀가 내뱉은 뜨거운 숨결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혀를 굴려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며 두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와 엉덩이, 허리와 가슴을 부드럽게 문지르자 그녀는 내 성기를 자극하기 힘든 듯 연달아 거친 숨을 토해냈다. 손가락을 뉘여 손톱 끝으로 그녀의 종아리에서부터 허벅지를 천천히 타고 올라가 잔뜩 젖은 그녀의 안에 부드럽게 밀어넣고는 그녀의 약점인 손가락 두 마디 쯤의 돌기를 건드리자 방 안이 울리도록 길고 큰 신음으로 보답하는 그녀. 더 이상의 애무가 필요 없을 정도로 흥건한 그녀의 몸을 확인한 나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뒤에서 안은 채 이젠 더 이상 단단해질 수 없는 내 성기를 삽입했다.
뒤에서의 허리 놀림에 맞춰 교성을 내뱉는 그녀의 엉덩이를 손으로 쓰다듬다 고개를 든 순간, 스탠드의 불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방 끝에 놓인 의자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애무하느라 벗어버린 안경을 가져오고 싶은 갑갑함을 억지로 누르며 시선을 집중하니, 의자에 누군가가 앉아있는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깜짝 놀라 움직임을 멈추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내뱉은 그녀의 한 마디는 단호했다. “왜 그래? 내 꿈을 이루게 해 주고 싶다며?”
4년 전의 그 날이 떠올랐다. 내 꿈인 애널 섹스에 관한 얘기를 했던 그 날의 기억이. 곧이어 떠오른 그녀의 꿈인 섹스까지도. “난 말야. 자길 묶어놓고서 다른 남자랑 섹스를 하고 싶어. 자기는 묶여있어서 아무 것도 못 하고, 그저 내가 다른 남자의 품 안에서 애무당하고 흥분해서 절정에 오르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만’ 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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