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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01009 / Sex] 세상을 몸으로 받아들이다 by 에일레스


얼마 전 본 미드 <30 Rock>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습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매력적인 간호사 셀마 헤이엑과 데이트중인 알렉 볼드윈은 티나 페이와의 대화 중에 셀마 헤이엑과 '다음 과정'을 밟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티나 페이는 "결혼이요?" "동거요?" 하고 묻지만, 아니라고 대답하던 알렉 볼드윈은 "지금이 90년대 중반이라고 생각해보게." 라고 대답하고, 티나 페이는 깜짝 놀라며 묻습니다.

"아직 같이 안 잤단 말이에요?(You haven't had sex?)"

그렇습니다. 우리는 연애하는 사람들이 섹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랑의 표현이 당연해졌고, 자연스러운 시대라는 뜻도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만나고, 사랑하고, 섹스하고, 결혼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 긴 서론은, 제가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영화를 위한 초석이었습니다. 
1995년작, <일급 살인>입니다.

일급 살인
감독 마크 로코 (1995 / 프랑스,미국)
출연 크리스찬 슬레이터,케빈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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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헨리 영(케빈 베이컨)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여동생과 함께 자랍니다. 17살때 배고픈 여동생을 위해 상점에서 5달러를 훔친 죄로 악명높은 교도소인 알카트라즈에서 8년을 복역하다 탈옥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빛 한톨 들어오지 않는 지하 독방에서 3년 2개월이라는 시간을 갇혀 보냅니다. 마침내 지하 독방에서 나오던 날, 탈옥을 밀고했던 동료 죄수를 본 헨리 영은 그를 죽이고, '일급살인'으로 기소됩니다. 그리고 그의 변호사로 온 갓 법대를 졸업한 제임스 스탬필(크리스찬 슬레이터)과 만납니다. 제임스는 알카트라즈의 악행을 고발하며 헨리의 무죄를 주장하게 됩니다.

영화 속 헨리는 정말 '이렇게 불쌍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련한 캐릭터입니다. 그의 정신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습니다. 몸도 멀쩡하지 않은 상태로, 알카트라즈의 부소장인 밀튼 글렌(게리 올드만)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해 다리를 절고 독방에 오래 갇혀있던 여파로 몸도 오그라든 듯 늘 움츠리고 있습니다. 그는 야구를 좋아하지만 야구를 보기는 커녕 중계조차 들을 수 없는 현실로,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디마지오의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헤아립니다. 그리고 그는 제임스에게 자신은 여자와 자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당연하지요. 여자와 만나기조차 어려운 환경에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제임스는 헨리를 위해 특별한 기회를 준비합니다.



제임스는 매춘부를 법원 서기로 위장해 데리고 들어와서, 교도관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헨리가 그녀와 섹스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나 몸도 정신도 성치 않은 헨리는 관계를 갖는데 실패합니다. 헨리는 "안돼..."를 되뇌며 오열하고, 그런 그를 매춘부는 엄마처럼 다독이며 위로해줍니다.

이 장면은 헨리 영의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낸 그는 사회적인 모든 면이 닫혀있는 '불능' 상태입니다. 감옥에서 황폐해진 그의 정신은 현실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그의 상태가 그의 '성불구'로 나타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장면은 헨리가 처음으로 세상을 직접적으로 접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자유롭게 여자를 만나는, 자유롭게 섹스를 나누는, 그 세상 말입니다. 비록 헨리는 세상과의 접촉에 성공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그를 세상은 따뜻하게 감싸고 위로합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에게 세상을 보내준 사람이 제임스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헨리와 제임스의 우정이 돈독해짐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결국 헨리와 제임스는 재판에서 승리합니다. 헨리는 일급살인이 아닌 '살의 없는 살인'으로 인정받아 사형 선고를 받지 않게 됩니다. 재판장에서 나와 알카트라즈로 돌아가는 길에, 자주 찾아오겠다는 제임스에게 헨리는 밝게 말합니다.

"블랑쉬도 데려와. 다시 한번 해보게."

이제 헨리는 세상과 만날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는 제임스라는 소중한 친구를 얻었고, 글렌 부소장에게 굴복하지 않을 정신력 역시 얻었습니다. 글렌과 만나고 감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헨리는 몸을 꼿꼿히 세우고 당당하게 걷습니다. 늘 움츠려있던 것과 다른 모습으로 말입니다.

아마 다시 블랑쉬를 만났다면, 헨리는 멋진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


주제를 듣고, 단순히 '야한' 것이 아닌 가장 인상적인 섹스를 생각하다가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일급살인>에 등장하는 저 섹스신은 그 자체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했을지라도, 어떤 영화보다도 따뜻함을 남긴 장면이 아니었을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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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요상한 글로 첫 발자취를 남긴 저는 영계 한마리, 곰 한마리, 꽃미남 한사람으로 이루어진 3S에 새로 참여하게 된 군신(軍神) 한 '분'(-_-)입니다. (이 대목에서 웃으셔도 괜찮습니다 -_-ㅋ)
성격이 좀 시니컬해서 -ㅅ-; 감성과는 조금 거리가 멀지도 모르겠지만, 나름의 감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함께해주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