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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1712 / 오류] 아 다르고 어 다른 이틀 by 란테곰.


1.


아침은 밥에 물을 말아 먹으며 때웠다.


1-1.


아침 식사로 밥에 물을 말아 먹기 위해 일부러 자기 전 밥솥에서 밥을 한 그릇 퍼놓고 얇은 뚜껑을 덮어 식혔다. 다만 된 밥일 경우는 예외다. 애초에 된 밥은 물에 말아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살짝 질게 된 듯한 밥을 하자마자 바로 옮겨 세워놓은 뒤 천천히 식힌 밥이라면 최고다. 그런 밥일수록 밥에 말은 물에서까지 단맛이 난다. 마치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시리얼에 우유를 말아(?) 먹을 적에만 맛볼 수 있는 우유맛처럼. 


뜨거운 밥을 바로 말면 물도 뜨거워지기 때문에 좋지 않다. 찬밥에 부어줄 물이라면 암만 좋게 봐줘야 미지근한 물 정도고, 그나마도 생수나 정수기 물은 옳지 않다. 맑은 지하수등이 좋은데 그게 안된다면 우리집처럼 끓여서 먹는 물이 좋다. 정수기가 없어 결명자차를 끓여먹는 우리 집에선 그게 최고긴 하고, 또 요즘 세상에 끓여놓은 물을 얻어먹을 수 있는 집이 많지 않기에 물을 끓이는 것이 조금 귀찮긴 하지만 복을 누리며 산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 번에 큰 페트병 세 개 정도를 끓이지만 겨울인 지금도 이틀을 넘기기 힘들고, 내가 술이라도 마시고 오노라면 하루에 끝날 정도로 둘 다 물을 많이 마시는 우리 집이지만 그래도 밥 말아먹기에 좋을 정도의 물은 있다.


물에 말은 밥과 함께 하기에 좋은 반찬은 무어가 있을까. 오이지를 무친 것이 있다면 최고, 무 짠지가 있다면 그것도 옳다. 어릴 적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친구네 할머님이 늘 만들어 상 위에 올리셨던- 푹 익은 열무 이파리를 씻어 들깨가루와 참기름을 넣고 볶은 그것 역시 완전 좋으다. 집에서 잔뜩 만든 카레가 있다면 거기에 어울리는 반찬은 마늘쫑을 살짝 데쳐 매콤달콤하게 무친 것이 최고고, 단무지 무침이 있다면 그것도 옳고, 무 짠지가 있다면 완전 좋은 것과 비슷한 구성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기에 김치를 꺼내 먹었는데 푸욱 익은 김치맛이 참으로 깔끔하고 시원해서 몹시나 만족스러웠다.




2. 점심은 고추장찌개로 한 끼를 먹었다.


2-1.


점심으론 고추장찌개를 먹고 싶었다. 고기 먼저 볶아 기름을 내고, 채썰어 냉동실에 넣어놓았던 파를 한 움큼 넣어 향을 더하고, 거기에 참기름과 식용유를 조금 더한 뒤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넣어 약불로 비벼 고춧기름을 냈다. 어느 정도 빛깔이 나면 거기에 감자를 넣어 살짝 볶아주다 어제 밥 하며 쟁여놓았던 쌀뜨물을 부었다. 물이 끓고 감자가 익어갈 사이 애호박이니 양파니 고추니 느타리 버섯이니 썰고, 두부를 원해요? 그럼 사오세요. 해서 사온 두부 반 모도 네모 썰은 뒤 물 담아 놓은 통에 넣어놓았다. 그 사이 동생이 냉장고에 있던 콩나물을 무쳐달라길래 저녁에 국 끓일거니 아껴놓자고 협상을 했다.


끓어오르는 찌개에 애호박과 양파를 넣은 뒤,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민망해 봉다리에 들어있던 큰 봉다리 조미김을 접었다. 8등분이 좋을까 6등분이 좋을까하다 6등분 하기로 마음을 먹고선 일단 세로로 반을 접어 꾹꾹 눌러준 뒤 다시 펴 삼등분을 해 다시 접어 꾹꾹 눌러줬다. 김이 올라오는 밥상이라니 생각만 해도 과분하지만 그래도 이왕 김이 올라올거라면 맨김에 살짝 불을 쬔 것을 올리고 옆에 간장 종지를 따로 올려주는 편이 더 좋다- 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걸 차릴 자신도 받아먹을 용기도 없으니 조미김이라도 감사하게 먹기로 한다.


찌개가 끓는다. 오케이. 꺼진 듯 꺼지지 않는 약불로 줄인다. 감자를 미리 살짝 볶아주긴 했지만 그래도 푹 익기엔 시간이 모자란다. 다진 마늘 한 손, 국간장 쪼오오끔 넣은 뒤 나머지 간은... 저녁에 국 끓일 때랑 겹칠 수가 있어 새우젓을 메인으로 하기로 했다. 그래도 액젓도 쪼오오오끔 넣었다. 살짝 싱겁게 간을 맞춰두고 나머지 반찬을 한다. 냉장고에 있던 미역 오이 초무침을 꺼내고, 찌개에 넣고 남았던 느타리버섯에 들깨가루를 넣어 볶았다. 버섯을 끝내자마자 작은 팬을 꺼내 반숙 프라이를 준비하고, 아까 접어뒀던 김을 꺼냈다. 팬에 부은 기름이 놀러다니는(?) 것을 확인하고선 쟁여뒀던 버섯과 두부, 고추를 찌개에 넣었다. 다 넣고 난 뒤엔 계란 프라이를 했다. 




3. 저녁엔 모처럼 고기, 돼지불고기를 먹었다. 


3-1.


동생이 고기 고기 노래를 불렀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동네 정육점에서 앞다리살을 조금 사서 재워놓았다. 다른 데는 다 냉동을 주는데 유일하게 냉장 고기를 주는 곳이다. 고기는 잘 먹지만 비계는 거의 안 먹고, 껍데기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동생 때문에 물어봤더니 껍데기는 떼어놓았다 하셨다. 비계도 빼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럼 내가 먹기 심심해서 그냥 달라고 했다. 한 장 한 장 떼어다가 양념에 쟀다. 양념은 그냥 샀다. 근데 맥적이 먹고 싶어져서 고기를 조금 빼놓고 따로 양념을 해서 봉다리에 싸놓았다. 말이 맥적이지 현실은 된장 양념에 잰 고기다. 그래도 그냥 양념 사다 부어넣은 고기보단 맛날 것이여. 상추도 조금 사다 넣어놓고, 동생도 나도 환장하는 쌈무도 하나 사다놓았다. 


양념한 고기를 불에 올리면서 점심에 먹다 남은 고추장찌개에도 불을 얹었다. 상추도 씻고, 쌈무도 물을 좀 빼서 덜어놓고. 팬에서 올라오는 달달 짭짭한 냄새에 잠시 혼이 팔렸다가 양념된 고기라는 것이 불현듯 떠올라 얼른 뒤집었다. 에이, 쪼금 탔다. 불을 조금 낮췄다. 냉동된 고기에 비해서 썰린 것이 조금 두껍기에 찬찬히 익히기로 했다. 그 사이 아침에 너무 맛나게 먹었던 김치를 꺼냈다. 온 집안에 퍼진 냄새에 동생도 신이 났는지 말도 안 했는데 밥을 퍼놓고 있었다. 


상을 차려놓고 앉았다. TV가 없는 우리 집이기에 내 방 컴퓨터가 종종 TV 역할을 한다. 근데 둘 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영상엔 관심이 없었다. 얼른 고기부터 잔뜩 집어 입에 넣은 동생은 한참을 우물거리며 맛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 정육점 고기 좋기로 유명하다는 얘기에서부터 날이 요즘 너무 춥다는 얘기, 이제 또 한 살씩 먹는구나 라는 얘기 등 오만 시답잖은 소재로 얘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다음 날.




1.


아침은 밥에 물을 말아 먹으며 때웠다.


1-2.


어제 저녁에 고기를 먹고, 약속이 생겨서 나갔다가 자고 일어났는데 술이 덜 깼다. 아직도 입에서 술냄새가 심하게 났다. 뭔가를 쑤셔넣긴 해야 될 것 같았는데 속이 좋질 않았다. 밥에 물을 말아서 김치를 꺼내 먹었다. 맛이고 뭐고 모르겠고, 그냥 살려고 먹었다. 술똥을 빼야 술이 좀 깰테니까.




2. 점심은 고추장찌개로 한 끼를 잘 먹었다.


2-2.


밥먹고 한참을 자다 깼다. 역시 술엔 잠이 최고다. 옆구리를 벅벅 긁으며 뭐가 있나 봤는데, 어제 먹다 남은 고추장찌개가 있었다. 국 한 그릇 퍼서 밥을 넣고 말듯 비비듯 해 먹었다. 으, 아직도 속이 좋지 않다. 그리고 아직 화장실에 가고 싶질 않았다.




3. 저녁엔 모처럼 고기, 돼지불고기를 먹었다. 


3-2.


밥을 먹고 나니 속이 좋지 않아 또 누웠다. 누워있자니 잠이 와 그냥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자다가 뭔가 달콤짭짤한 냄새가 나길래 보니 동생이 어제 재놓은 고기를 굽고 있었다. 밥 조금 퍼다가 동생이 구운 고기 몇 점 뺏어 억지로 먹었다. 으. 이제 좀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술똥도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