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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1710 / 흰머리] 새하얗게 by 에일레스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Marie Antoinette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리가 하룻밤 새 하얗게 세어 버린 것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정확한 원인은 불명으로, 극심한 공포나 분노, 스트레스 등을 겪는 것이 원인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무어도 사형 당하기 전날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는 등, 역사 속에서 몇몇 인물들에 대해 이러한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가깝게는, 문재인 대통령도 30대 중반이던 1987년에 노태우가 대통령 당선되는 과정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아 20여일간 몸살을 앓고 났더니 머리가 세었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늘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을 보이는 인물이 나오는 작품이다.

 

 

내일의 죠 두번째 극장판

내일의 죠 두번째 극장판 (Tomorrow's Joe 2nd Movie, 1981)

네티즌 10.00(3) 평점주기
개요 애니메이션, 드라마112분일본
감독 데자키 오사무
출연 아오이 테루히코, 오카다 마스미
내용 리키이시와 죠의 결전은 그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이 진행되었... 줄거리더보기

 

어린 시절의 어느날. 나는 TV에서 어떤 애니메이션 하나를 보게 됐다. 앞부분을 못 봐서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데도, 뒷부분만으로도 그 작품은 엄청나게 빠져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작품은 TV에서 정식 방영을 시작했다. <도전자 허리케인>이라는 이름으로 방송되던 그 애니메이션을 나는 정말 좋아했었다. 그 작품의 원제가 <내일의 죠>이고, 내가 처음 봤던 것은 극장판 버전이며, 정식 방영을 해준 것은 TV판 2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원작 만화책 역시 훨씬 나중에야 봤다.

 

<내일의 죠>는 야부키 죠라는 이름의 고아 출신 권투선수의 이야기다. 망나니였던 죠는 권투를 하면서 승승장구하는데, 소년원 시절부터의 라이벌이었던 리키이시와 치열한 승부 끝에 패배한다. 그러나 리키이시는 죠와의 승부에서 무리를 한 탓에 사망한다. 이 때문에 충격을 받은 죠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상대의 얼굴을 강타하지 못하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데, 카를로스 리베라와의 대결을 통해 다시금 복서로서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펀치드렁크 증세가 찾아오고, 죠는 그 상태로 챔피언 호세 멘도사와 대결하게 된다.

 

호세 멘도사는 시합 내내 우월한 경기력을 보인다. 죠는 계속해서 호세 멘도사의 펀치에 맞고, 또 맞고, 때론 다운도 되지만, 끝내 일어난다.

 

 

 

 

호세는 계속 링에서 버티고 있는 죠를 보며 뭔가 정신적인 혼돈을 느낀다. 왜 쓰러지지 않을까. 왜 몸을 아끼지 않을까.

 

 

 

경기를 하면서 혼돈을 겪는 호세는 자신이 죠가 아닌 그의 환영과 싸우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한다. 그러나 시합은 계속되고, 죠는 마지막 라운드에 이르러 크로스 카운터를 성공시키기까지 한다.

그리고 마침내 15라운드가 모두 끝난다.

 

 

 

여기서 바로 이 명대사가 등장한다.

 

 

 

판정은 호세의 손을 들어준다. 챔피언 방어 성공.

 

 

 

어렸을 때 본 장면인데도, 이 부분이 명확히 기억이 난다. 공포로 일그러지고 하얗게 머리가 센 호세의 모습.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이라는 용어는 몰랐지만, 이때부터 그런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쓰다보니 호세 중심적으로 쓰긴 했는데, 나는 정말 죠를 좋아했다. 70년대에 나온 만화가 왜 그렇게 내게 어필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죠라는 캐릭터가 너무나도 마음을 두드렸다.

세상에 혼자 떨어진 고아, 거친 환경에서 거칠게 자랄 수 밖에 없던 소년. 자라서 단 하나의 라이벌이자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상대가 자신 때문에 죽음을 맞자 그 충격으로 괴로워하며- 권투 선수인데도 상대의 얼굴을 공격할 수 없었던 가엾은 영혼. 끝끝내 자신이 모든 것을 걸었던 권투로 자기 자신을 남김없이, 새하얗게 불태웠던 사람.

비록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 고독과 비장미가 어찌나 마음을 끌었는지.

MBC와 투니버스에서 모두 죠 역의 목소리 연기를 하신 성우 이규화님을 이때부터 좋아하기도 했다. (이규화님은 내 어릴 적 이상형 중 하나였던 <피구왕 통키>의 민대풍 역 목소리 연기도 하셨다. 좋아할 수 밖에.. +_+)

 

 

 

 

내가 이 작품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MBC에서 순조롭게 방영하다가 갑자기 방영 중단이 됐었는데, 그때 방송국에 전화해서 이거 왜 방송 안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ㅋㅋㅋㅋ 전화를 받은 방송국 직원은 매우 무심하게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어리고 소심했던 나는 그냥 전화를 끊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몇년 후 투니버스에서 다시 방영을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지금은 극장판 DVD를 가지고 있고.. ㅎ

 

이렇게 좋아하는 작품이었으니, 흰머리 관련한 소재를 생각하면서 호세를 생각한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뭔가 원인이 있어서, 머리가 세었다면, 좀 나았을까?

... 라고 생각해보는 나는, 그냥 유전적으로- 머리가 빨리 세는 -_- 1인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염색하지 않은 머리로 다니셔도 참 멋있으시던데. 나는 그렇게 멋있을 자신이 없으므로 ㅠㅠ

다음 주말쯤엔 염색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