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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1711 / 연애] 란테곰 탄생기. by 란테곰



70년대 후반, 내천을 중심으로 마을이 반으로 나뉜 용머리마을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연이었다. 내천 왼쪽에서 자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던 부모님과 그를 돕던 형제들과 함께 살던 연은 가족에게 있어서 애물단지였다. 가게를 돕기보단 냇가 건너 작지만 음식 솜씨가 좋기로 유명한 식당의 아들인 춘과 어울려 밤마다 술을 퍼마시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동네에서 소문난 말썽쟁이였던 춘과 연이 어울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으나 연은 전혀 개의치 않고 춘과 어울려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족들은 둘을 떼어놓기 위해 연에게 조금 먼 곳에 일자리를 구해주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지만 월급만 들어오면 연은 춘과 어울려 그 돈을 순식간에 탕진해버리는 등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어느 날, 연은 춘의 여동생인 영을 만나게 되었다. 집에서 꾸리는 식당을 돕던 영에게 연은 순식간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그렇지만 연은 춘의 반대가 두려워 차마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가족들도 반대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기에 영에 대해선 다들 알고 있었지만 영의 오빠인 춘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갈등하던 연은 술에 불콰하게 취해 춘을 찾아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는 동생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아직 채 스물도 되지 않았고 게다가 연과 열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을 달라니 개소리하지 말라며 춘은 단박에 거절했다. 하지만 연은 매일 춘을 찾아가 애걸복걸했다. 그런 일이 한 달쯤 계속되자 연에게 질려버린 춘은 손사레를 치며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해버리고야 말았다. 가장 큰 관문을 통과했다고 생각한 연은 만세를 외치며 온동네를 쏘다녔다.

  

하지만 영에게 있어 연은 그저 말썽쟁이 오빠인 춘과 친한 동네 오빠일 뿐이었다. 변변한 직장도 없이 나이 차이가 열 살이나 나는 연에게 영은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영의 어머니 역시 말썽쟁이 아들과 어울려 허송세월을 보내는 연에게 딸을 줄 생각이 없었다. 연은 고민했다. 자기가 가진 것은 끈기 단 하나였다. 그래서 연은 매일 그 식당을 찾아가 저녁을 먹었다. 그 식비를 마련하기 위해 환경미화원이라는 일자리도 기꺼이 얻었다. 하지만 영과 영의 어머니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연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연의 달라진 모습을 반신반의했다. 

   

일자리도 구하고 매일 찾아갔지만 찬바람만 쌩쌩 부는 영의 모습에 연은 낙담했다. 게다가 환경미화원 푼돈 월급으론 밥값도 해결하기 힘들었다. 연은 고민하다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강 건너편을 맡은 미화원 친구에게 사정해 담당구역을 맞바꾸고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영의 가게 앞을 청소했다. 영과 영의 어머니는 저게 얼마나 가겠냐며 콧방귀를 뀌었고 가족들도 동네 부끄러우니 그만두라고 말렸지만 연은 개의치 않았다.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도 연의 아침 청소는 멈추지 않았다. 넉살도 좋게 영의 식당 근처에 자리 잡은 사장님들과 친해져 어느덧 영의 어머니에게 저런 남자 또 없다면서 연의 편을 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영의 어머니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늘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그렇게 청소를 시작한 지 2년 째, 연의 순애보는 이미 온 동네에 퍼져있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다음날 아침이면 영의 가게 앞엔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내내 데면데면하게 굴었던 영도 연의 지속적인 노력에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다. 어느덧 반대하는 사람은 영의 어머니만 남게 되었다. 연은 결국 식당으로 찾아가 영의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게가 북적북적한 점심시간을 일부러 노렸다. 내가 해 온 노력을 보았을 가게 손님들도 내 편을 들어줄 거라는 계산적인 속셈이 있었다. 하지만 영의 어머니는 그런 연의 속셈을 꿰뚫어보시고는 당장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고는 그를 쫓아냈다. 그런데 영이 나섰다. 저 사람한테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영은 연을 따라 가게를 나서 그의 젖은 옷과 몸을 닦아주었다.

 

두 달 뒤, 연과 영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끝까지 연을 성에 차지 않아하신 영의 어머니를 제외한 모두가 그들의 결혼을 축하했다. 친구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열 살이나 어린 신부를 맞았다는 이유로 연의 발바닥은 남아나질 않았다. 연과 영 사이에서 나온 첫 아이는 태, 둘째는 현이라 이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