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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1709 / 역모] 끝판왕 by 란테곰.


열 살 무렵 나는 아버지에게서 장기를 배웠다. 졸은 이렇게 움직이고 차는 이렇고. 그렇게 기본을 가르쳐주신 아버지는 나와 함께 장기를 두는 것을, 아니 나에게 장기를 가르쳐주는 것을 즐기셨다처음은 한쪽 차포마상을 다 떼고 붙는 장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당연히 - 계속 졌다. 명절 때 친척 어른들에게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시험만 보면 1등을 하던 당시의 내겐 패배라는 그 자체가 너무나 싫은 경험이었다. 처음엔 지는 것이 싫어 나름 열심히 했으나 줄곧 깨지기만 하면서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그러다 같은 동네에 살던 형들과 장기를 두게 되었는데, 아부지랑 두면 맨날 지던 것에 비해 그 형들과는 엎치락뒤치락 할 수 있었다. 이게 뭐야? 나보다 나이 많은 형들인데? 왜 이 수를 못 읽지? 라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근데 왜 아부지는 이 수를 읽지? 아니 왜 애초에 이렇게 두게 해주지를 않지? 라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 날이 휘둘리는 것이 무엇인지 를 처음 깨달았던 날이자, ‘아부지를 상대로 이기고 싶다 는 마음을 먹은 날이었지 싶다. 우리 집의 왕을 향해 처음으로 반항의 깃발을 가슴 속에 품은 날이기도 하다.

 

온 동네가 비닐하우스 촌이었기에 변변한 놀이기구도 여건도 없던 나에겐 그 장기가 매우 중요한 놀이도구임과 동시에, 그 당시 내겐 너무 커보였던 [끝판왕] 아부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매달렸다. 동네 형들은 물론 그 형들의 아부지랑들도 붙고, 명절에 올라가면 큰아부지한테 장기 한 판 두자고 조르고. ‘네가 이기면 세뱃돈 주고 지면 안 준다?‘ 는 큰아부지의 농담에 속은 철렁했음에도 알았다고 큰소리를 치다가 집에 돌아오며 패배감과 주머니의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울기도 했었다.

 

 

 

머리가 조금씩 굵어가고, 수순을 조금씩 깨우쳐가며 아부지와의 장기는 조금씩 달라져갔다. 늘 차포마상을 떼다 언제부턴가 상을 붙이고, 마를 붙이고, 급기야 맞장기를 두게 되었다그러다 처음 아부지와의 맞장기를 이기던 날이었다. 너무나도 기쁜 마음에 방방 뛰어다녔다. 내 삶에 가장 가깝지만 가장 높은 산을 넘은 기분이었다. 아부지는 그런 나를 보며 머쓱한 웃음을 지으셨을 뿐이었다.

 

저녁밥을 먹는데, 당시 핫했던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가 방송되고 있었다. ‘티비를 켜놓긴 했지만 우선 밥에 집중하고 티비는 소리로만 들어라, 티비를 [보고] 싶거든 밥을 빨리 집중해서 맛있게 먹고 그 다음에 티비를 봐라 가 신조였던 집안에서 감히 동물의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을 볼 수는 없었다. 당시 우리집에선 식사가 끝나기 전엔 그저 라디오에 가까운 도구였다. - 진짜로 - 그렇기에 10분도 채 안되어 식사를 마치고 티비를 보는데 사자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무리를 이끌고 있던 나이 많은 숫사자에게 어린 숫사자가 덤벼드는 모습이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어린 숫사자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여기가 아프리카가 아니더라도 [끝판왕]이 있으면 깨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맞고 또 옳다 생각했다.

 

내 응원에 힘입어(?) 어린 숫사자가 나이 많은 숫사자를 이겼다. 그리고 나이 많은 숫사자는 무리에서 배제되어 홀로 무리에서 멀어져갔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아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부지와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다. 키가 작고 단단한 덩치에 피부가 까맣고 호안虎眼이라 불릴 정도로 날카로운 눈매와 부리부리한 눈빛을 가졌던 아버지의 눈, 그래서 평소에 감히 눈을 마주칠 생각도 하기 힘들었던 그 눈은, 그날따라 유독 나이 많은 숫사자의 눈과 같아보였다.

 

다음 날부터 나는 아부지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집 근처 강에서의 낚시, 바둑의 기초, 마작의 기초, 사주 보는 법, 집에서 기르던 작물을 심고 기르는 법, 비닐하우스 안에 집을 짓는 법, 기름보일러가 말썽일 적에 고치는 법, 심지어 담배도 아부지에게, 술도 아부지에게 배웠다. 그리고 그때마다 난 티비에 나오던, 싸움에 밀려 무리를 떠나던 나이 많은 숫사자의 눈을 얼핏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어깨동무가 가능하게 될 무렵부터 아부지는 불콰하게 취하시면 나를 찾아 어깨동무를 한 채로 동네를 걷는 것을 좋아하셨다. 담배를 입에 물고 몸을 휘청이시고, 가끔은 노래도 고래고래 하시고. 그러다 집에 돌아올 무렵엔 꼭 그 말씀을 하셨다.

 

니가 더 크면, 아빠랑 꼭 술 한 잔 하자. 아빠가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어린 나에겐 그저 술주정에 불과했던 그 얘기. 아부지가 취하셨을 때마다 듣고 또 들어 귀에 박혀버린 지겨운 얘기.


허나 20년이 지난 지금엔, 아부지가 그렇게나 얘기해주고 싶어하셨던 그 얘기를 못 듣고 보내드린 것이 늘 마음에 밟힐 뿐이다. 사람 구실 못하고 제 하고 싶은 것만 잔뜩 하다 이제 와서 동생 하나 챙기는 데도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많은 지금 새삼 생각해보면, 아부지 당신은 내게 언제나 깰 수 있을지 모를 영원한 [끝판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