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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1704 / 먼지] D35.2 by 란테곰


“...5년 전에도, 같은 얘기 했었죠?”


“....”


그랬는데, 그랬는데...”


꿀꺽.


일단 5년 전과 비교해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 경과를 지켜봐야 하구요. 가급적이면...”


이후 의사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내 머릿속에선 판사가 판결문을 읽고 난 뒤 망치를 들어 때리는 땅, , .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20125, 나는 동생과 함께 모 대학병원 신경과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그보다 5년 전엔 동생은 수술실에서, 나는 대기실에서 8시간을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2주 뒤. 재수술을 이유로 다시 4시간을 문 하나를 사이에 둔 같은공간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달리 한 채로 함께 있었다.

 

그 뒤 3주 동안의 의식 불명을 포함해 한 달 동안 중환자실, 이후 두 달 반 동안 입원, 그 모든 것을 끝마치고 난 뒤, 다행스럽게도 동생과 나는 함께 집에서의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그 날 이후 병원에 가는 것을 몹시 기피하게 되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병원에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 혹은 공포감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동네 의원이나 치과 등은 필요하다 싶으면 스스로 다녀올 수는 있지만 검사라는 얘기를 꺼내고 병원 이야기를 꺼내면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법 하다. ‘검사 한 번 하면 될 거에요‘MRI 한 번 찍어봐야 될 것 같아요.‘ 로 바뀌고 급기야 수술하는 데엔 이만큼 시간이 들어요를 지나 퇴원까지 2주면 될 거에요까지 다다르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던 것도 있고, 게다가 의사라는 사람을 믿고 사인을 하고 동의를 했지만 정작 그 병원에서 나오기까지는 넉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필요했으니, 나라도 다시 찾아가기는, ’큰 병원 의사라는 사람의 말을 다시 믿기는 솔직히 쉽지 않다 생각했다.

 

동생이 앓고 있는 병은 이름 그대로 희귀난치성, 완치가 어려운 질병을 앓고 있더라도 5년에 한 번씩은 재검사를 통해 재등록을 해야 한다. 바꿔 말하자면 5년마다 한 번은 큰 병원에 가서 큰 병원 의사를 만나야 한다. 일정은 간단하다. 한 시간 반 이동해서 큰 병원 의사3분 만나고, MRI 찍을 날짜를 잡는다. 다음번엔 MRI를 찍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큰 병원 의사3분 만나면 내 손에 서류가 남고 그걸 제출하면 끝이다.

 

그 세 번의 병원 방문은 우리 둘 모두에게 생각보다 큰 피로감으로 남았다. 우선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답답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이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뜨뜻미지근한 공기, 동생과 내가 병원 냄새라고 부르는 약냄새 섞인 알콜 냄새, 의식적으로 피로감을 감추려는 보호자들의 얼굴들, 모두가 낯익지만 반갑지 않은 것들뿐이다. 최대한 빨리 나오고 싶은, 벗어나고 싶은 공간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 번째로 병원에 가서 필요한 서류를 손에 쥐고 밖에 나왔을 땐 비가 오고 있었다. 빗방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벚꽃들이 까만 아스팔트 바닥에 하얗고 발간 점을 아로새기고 있었다. 손에 들린 서류는 종이 석 장이라기엔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어서 갖다 주고 치워버리고 싶은, 이 일을 얼른 마무리 짓고 싶은 기분을 채찍질하는 요소일 뿐이었다. 뭣보다 병원에서 쌓인 기운을 얼른 내뿜고 싶어서 스읍.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크게 내쉬었다.

 

오빠, 오늘 미세먼지 장난 아니래.”

 

알아. 근데, 병원 공기보단 차라리 이게 더 좋다.”

 

그치?”

 

스읍. 동생도 나를 따라 깊이 한숨을 쉬었다. 십분 전까지도 온몸에 차곡차곡 쌓였던 불편함이 바람 한 번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는 기분을 나누며, 우리 둘은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