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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1705 / 선택] 선택을 위한 환경 by 에일레스

 

우리 엄마는 어렸을 때 공부를 매우 잘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외가에 가면,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시다가

"네 엄마는 어렸을 때 1등만 했어. 공부 참 잘했는데.. 학교를 못가서.."

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사실 그땐 이런 얘길 들으면 왠지 '근데 너는 왜 너네 엄마처럼 못하니?' 하는 것 같아서 쪼금 짜증났음을 고백한다 ㅠㅠ)

 

엄마는 중학교까지밖에 나오지 못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자식들을 진학하지 못하게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따님들은 엄마처럼 중졸, 아드님들은 고졸, 셋째 외삼촌만 스스로 벌어서 대학을 졸업하셨다고 했다.

어렸을 때 언젠가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왜 엄마를 고등학교에 안 보냈어? 엄마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모르지- 공부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나봐.

 

엄마는 학력은 짧지만 책을 정말 많이 읽었고 그 덕분에 상식이나 지식이 매우 풍부했다. 특히 역사 쪽에 있어서는 내 기준으로 정말 엄청난 정도였다. TV에서 방송하는 사극을 보다가, 나는 이름도 잘 모르는 인물이 등장하면 엄마는 실제 역사 속에서 그 인물이 어땠고 나중에 어떻게 죽는지까지 다 알고 있는게 다반사였다. 엄마는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서, 내 또래 친구들의 어머니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인데도 우리 엄마만큼 전자기기라던가 컴퓨터 같은 걸 다룰 줄 아는 사람을 거의 못 봤다. 이제 60대 중반인 우리 엄마는 태블릿으로 웹소설을 읽고, 동창모임에서 총무를 맡아서 회비 내역을 파일로 만들어 관리한다.

그런 엄마가 공부를 계속 했다면 어땠을까.

 

 

 

 

위험한 아이들 (Dangerous Minds, 1995)

네티즌 8.23(115) 평점주기
개요 드라마1995.09.30 개봉99분미국15세 관람가
감독 존 N. 스미스
출연 미셸 파이퍼, 조지 던자, 코트니 B. 반스, 로빈 바틀...출연자더보기
내용 루앤 존슨(Louanne Johnson: 미쉘 파이퍼 분)은 9년간의 미해... 줄거리더보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위험한 아이들>은 문제아들을 가르치게 된 교사 루앤 존슨과 그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아카데미 클래스'라고 불리는 특수 학급에 있는 그 아이들은 대부분 결손가정에서 어렵게 살면서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세상이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체득하고 체념해버린 그 아이들에게 루앤은 학습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바탕에는 학생들이 학교에 온 것이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과정이 있다.

 

 

 

 

'선택'에 대한 논쟁은 영화에서 두어번 반복되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이 장면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동사를 묻는 질문에 캘리가 '선택하다'라고 답하며,' 우리는 늘 무엇이건 선택한다'고 설명한다. 인생의 매 순간이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조금 더 구체화되어 나오는 것이 다음의 이야기이다.

학생인 에밀리오와 라울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고, 루앤은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라울은 정학을 당하고, 다음 수업에 들어가자 학생들은 분위기가 안 좋다. 그들은 루앤이 싸움에 끼어들어 일을 크게 키웠다고 배신자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 장면이다.

 

 

 

실제로 빈민가 출신의 많은 아이들이 위에 나온 얘기처럼 학교에 가지 않고 마약을 팔고 사람을 죽인다. 이 영화의 개봉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었던 <오즈>라는 미드를 보면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나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에 들어가는 소년범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그런 나쁜 물에 빠지지 않고 (물론 조금 거칠긴 하지만) 꼬박꼬박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나와 앉아있는 이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노력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바르게 살기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다만 교육이라는 것은, 단순히 아이들의 선택만으로 이끌어지기에는 무리가 있다. 거기엔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루앤처럼 아이들에게 애정을 갖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고 하는 교육자가 있어야 하고, 자식들이 교육받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부모도 있어야 한다. 학교가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영화에서 루앤은 몇 번의 좌절을 겪는다. 반에서 제일 총명한 캘리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전학가도록 권고하고, 듀렐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부모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살인 협박을 받던 에밀리오는 루앤의 조언에 따라 교장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노크를 안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어느 하나라도 잘 맞물리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다.

 

이 영화에서 루앤 존슨은 아이들에게 어떤 경우에라도 굴복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아이들은 그 뜻에 감화되지만, 그리고 저 당시 영화를 보던 어린 나는 그 말을 믿었었지만, 글쎄..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지금의 나는 선택에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건 어디서부터 문제인걸까 싶기도 하고 그러네..

 

 

 

 

자라면서 엄마를 보면서, 우리 엄마가 공부를 계속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고,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실제로 공부도 잘 했었으니, 공부 쪽으로 잘 풀렸다면 좋지 않았을까.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좀 더 교육에 관심많은 부모 아래에서 자랐다면, 계속 공부를 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능력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의 엄마보다 더 편하게,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쩌면 내 인생도 쪼금은 달랐지 않았을까.. (아예 안 태어났을 수도 있겠다..)

 

지금 시점에서 이런 생각들은, 그냥 기대만큼 효도하지 못하는 딸의 푸념거리 같이 들리는 것 같다.

 

 

 

 

+

 

 

 

 

이 영화의 백미는 역시 영화보다 유명한 OST, 쿨리오의 'Gangsta's paradise' 이다.

영화 오프닝에 이 노래가 울려퍼지면서 나오는 부분은 정말 너무나 좋다.

위의 영상은 이 노래의 공식 뮤직비디오이고, 미셸 파이퍼가 직접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