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이 왔다. 오랜만이었다.
평소 받았던 메일처럼 길고 자세한 내용을 한 단어로 줄이자면 바로 선택이었다.
당신은 선택을 했다.
난 그 선택에 대해서 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갓 시작한 일이 문제였다.
집에 돌아와 씻고 나면 당장 꾸벅 꾸벅 졸기 시작해
- 너무 오래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 내내 허리가 아파서 버티다가 -
열 시 땡 치면 방에 불 끄고 누워 잠을 청하기 바쁘다보니
전하고 싶은, 하고 싶은,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았음에도 도저히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몇 번 시도는 해봤으나 피곤에 지친 머리는 제대로 된 문장을 단 한 번도 내어놓질 못했다.
그래서 차마 보내지 못한 채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웠다.
아니,
사실 핑계다. 보내려면 보냈을 것이다.
다만, 머릿속 어딘가에 Now loading이라는 단어만 끝없이 떠올라 있는 상황에서
떠오르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써봐야 내가 한 선택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말할 수가 없었다.
상대의 선택에 대한 내 답변이기에 더더욱 중요한 이번 메일은
내가 만족할 수 없다면 당신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답이 될 것이 뻔했다.
내 머리에도 가슴에도 무언가를 남기지 못한 채 보내버리면 당신에게도 뭔가가 전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제대로 써서 보낼 수 있을 때까지는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저 가슴에 계속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왜일까.
만약이란 말처럼 덧없는 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썼던 메일들의 시작과 중간과 끝엔 그 만약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 있었다.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론 아직 만약, 혹시. 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아쉬움과 후회를 핑계 삼아 떠올려보는 현실 회피일 뿐이라 말하면 너무 서글프지만
그게 사실이고 또 그걸 안 하려 해도 잘 안 되니 힘든 것이었다.
비단 취업과 선택에 대한 대답뿐만 아니라
판결, 대선, 정리 등등 온갖 일들이 휘몰아치는 한 달을 보내면서도
만약이란 단어를 수십 번이나 떠올렸던 이유는 결국 ‘아직’에 있었다.
엉켜버린 목걸이를 풀려면 결국 바늘로 한 땀 한 땀 매듭을 넓혀가는 방법밖엔 없다.
- 무척 부끄러운 표현이지만 - 그렇게 잔뜩 엉킨 감정의 목걸이를 풀고 나서야
난,
내 선택을 당신에게 온전히 전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06 / 직장] 직장인의 판타지 by 에일레스 (0) | 2017.07.01 |
---|---|
[201705 / 선택] 선택을 위한 환경 by 에일레스 (0) | 2017.06.01 |
[201704 / 먼지] D35.2 by 란테곰 (0) | 2017.05.01 |
[201704 / 먼지]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인가. by 에일레스 (0) | 2017.04.30 |
[201703 / Exotic] 이국적인, 더할 나위 없이. by 김교주 (0) | 2017.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