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년

[201004 / 길] 눈 내리는 밤은 언제나 참기 힘든 지난 추억이. by 란테곰

1999년 12월, 아침부터 눈발이 심하게 날리던 어느 날, 숙제를 하느라 정신없는 야자시간에 낭보 하나가 날아들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버스가 끊길 지경인지라 장거리 등교자를 일찍 귀가시킨다는 것. 용인에서 수원까지 한 시간을 넘는 거리의 학교를 오가는 동안 처음으로 들은 기쁜 소식이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겠다. 미처 끝내지 못한 숙제들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얍실한 생각도 들었고.

콧노래를 흥얼대며 가방을 챙겨들고 출발한 것이 대략 여덟시 반, 무려 한 시간 반이나 일찍 끝남에 감사하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수원에서 용인으로 가는 좌석 버스는 600번, 그 외에 - 지금도 건재한 - 일반 버스 66번들이 있으니 두려울 것이 하나 없었던 우린 그렇게 웃으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으나, 그 때부터 내 평생 잊지 못할 하루가 시작되었다. 정말로 버스가 끊겨버렸으니까.

버스가 끊겼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중학교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하루 용돈이었던 백원과 돌아갈 차비까지 깔끔하게 오락실에 털어주고 집이 같은 방향인 친구와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던 어느 토요일. 오락실을 나섰을 땐 그저 눈발이 조금 날리고 있을 뿐이었는데 점점 눈발이 짙어지고 하늘이 컴컴해 - 토요일 오후 다섯 시에! - 지더니 순식간에 발목이 넘게 쌓인 눈을 헤치며 고생했던 기억이. 평소 30분이 조금 넘게 걸렸던 길을 두 시간 가까이 걸려서야 겨우 집에 도착했고, 우리 집에서 잠시 날씨를 지켜보다 돌아가기로 했던 친구 녀석은 결국 그 날 우리 집에서 자고 가야 했던 기억이. 하늘을 보던 아버지께서 여기가 강원도도 아닌데 웬 난리냐며 한숨을 쉬셨던 기억이 말이다. 아스라이 떠오르는 가슴 아픈 기억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었지만 결국, 방법이 없던 나는 한숨을 쉬며 집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했다며.

아주대를 지나고, 원천유원지를 지나고, 당시 막 짓고 있던 영통을 지나 수원 인터체인지에 도착한 것이 12시 즈음으로 기억한다. 평소에 많이 걸어야하는 환경에서 살아왔던 나이기에 걷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풋내가 풀풀 풍겨나는 애송이틱한 자신감이었음을 깨닫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얼른 집에 가서 밥 먹고 자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찬 채 그저 묵묵하게 걷기만을 계속했다. 그 와중에도 ‘고행을 통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헛된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워낙에 강렬한 기억이라 방어기제가 발동된건지 모르겠지만 수원 인터체인지 이후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중간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진 난, 그저 집에 도착한 것이 얼추 새벽 다섯 시였고 그 시간은 평소 학교에 가기 위해 잠을 깨야 했던 시간이었기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 먹고 씻고 다시 학교로 갔다는 것 외엔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다는 말씀. 집에서 학교로 전화해서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었기에 오전 내내 양호실도 아닌 따뜻한 온돌 바닥의 당직실에서 신나게 잤다는 것만은 맞고, 면죄부 어쩌고 했던 얍실한 생각은 씨알도 먹혀들지 않아 결국 야자시간에 신나게 맞았다는 것만은 기억하는데 말이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간 사이에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르는데;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