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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01003 / 미래] 미래라는 건 언제나 안개 속이잖아요. 안 그래요? by 김교주

필진들에게 미래라는 주제어를 던졌을 때, 저는 이미 머리 속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책을 선택한 다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한 달이 어찌나 스펙타클하고 버라이어티하던지 조용히 컴퓨터 앞에 앉아 제 몫의 글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모처럼 점심식사가 일찍 끝난 오늘, 마감을 넘겨서는 안된다는 책임감과 함께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좁은 문 전원 교향곡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앙드레 지드 (을유문화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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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건 또 뭐냐는 표정을 지으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좁은 문과 전원 교향곡, 둘 중 어느 쪽일까 고민하실지도요. 제가 오늘 추천하려고 하는 책은 전자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은 들어보았을 법한 작가의 대표작, <좁은 문>인 게지요.

제롬과 알리샤는 사촌지간입니다. 서로 꽤 사랑하고 있죠. 알리샤의 동생 쥘리에트가 제롬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제롬의 마음은 알리샤에게 있으니 이 사랑의 승자는 알리샤가 되어야했을 텐데... 잠깐, 잠깐만요.
사실 여기에서 제가 좁은 문의 줄거리를 나열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좁은문 한 번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이런 겁니다. 이 책 알죠? 어땠어요? 난 이 책을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읽었어요. 

제롬과 알리샤는 분명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맞습니다. 알리샤와 제롬의 마음이 지드라는 문호의 손을 거쳐 대체적으로 고상하고 때로 격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사람의 태도에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음에도 그 사랑의 감정을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내비치기를 두려워합니다. 이런 모습은 제롬보다도 알리샤 쪽에서 강하게 나타나는데 알리샤가 제롬보다 연상이라는 점, 자신의 동생이 제롬을 사랑하고 있다는 점,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등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가볍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많이 제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이들이 함께하는 미래를 좀처럼 꿈꾸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오다 유지 (織田裕二, Oda Yuji) / 일본배우
출생 1967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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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러브스토리>에서 극강의 우유부단함을 보여준 오다 유지. 제롬과 꽤 어울려요. 우훗.)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내가 만나고 있는 상대와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상대가 꿈꾸고 있는 미래 속에 내가 있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요. 그런데 이들 두 사람을 보고있노라면 제롬의 우유부단함은 하늘을 찌르고 알리샤의 무기력함이 땅을 뚫을 기세입니다. 사랑을 말로만 하나요. 사랑한다면 조금 더 열심히 성심성의껏 서로에게 달려가줘야지요. 설령 그게 바보같은 하루밤의 꿈으로 끝나버릴, 말 그대로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 망상이라 하더라도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망상과 꿈들이 전부 용서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드는 고지식한 두 사람에게 하늘은 아무 것도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저와의 미래를 꿈꾸는 제 연인에게 저는 항상 대답하곤 했습니다. 가능성을 추측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미래란 마치 안개와도 같은 거라고. 나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 것도 추측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의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면 그럴 수 있을 것도 같다고. 설령 나중에 그 꿈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상처받는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그가 나를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미래를 함께 꿈꾸는 행위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을 것도 같다고. 

그리고, 그에게 문득 말해주고 싶어졌습니다. 그대가 가끔 이야기하는 우리들 두 사람의 미래는 그대에게 만큼이나 내게도 소중하다고 말입니다. 다시 한 번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입니다. 

사랑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나약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내 사랑을 굳건히 할 방법을 찾았다는 아이러니에 웃게 됩니다. 좁은 문은, 결코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역시 사람이란 이토록 이기적인 존재라는 의미겠지요. 자, 그럼 이번 달의 제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어야겠습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독서를 기원합니다. May the force be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