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 라는 영화가 제 주위에서 큰 인기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딘가엔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얘기들이 대다수인 이야기들을 몇 가지 풀어놓는 형식의 영화였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 내용을 곱씹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일본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어 아직도 TV판, 특별판 등등으로 계속 나오고 있기도 한데요. 오늘, 팀블로그 세 번째 주제인 ‘미래’ 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본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 중 하나와 함께 하는, 속칭 ‘출발 비** 여행’ 스러운 글로 대신 할까 합니다.
발전, 개척, 희망등의 단어와 한묶음이라 생각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 작품. 일본의 인기 그룹인 Smap이 출연한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 특별판, 그 중에서도 카토리 싱고(Katori Shingo, 香取愼吾)가 주인공을 맡았던 이야기인 ‘Extra’입니다.
극단에 소속되어 있지만 잘 나가지 않는 배우인 타다노 이치로(싱고 분)는 생계 유지를 위해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고, 카메라도 없지만 대사는 있는’ 다소 묘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대부분 무의미한 대사들이었지만 급료는 착실히 입금이 되었기에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지 못하고 계속 하던 중, 다소 이상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옆자리의 누군가가 했던 말이 담뱃갑에 적혀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지요.
궁금한 마음에 엑스트라 업체에 달려가 질문을 하지만, ‘당신이 대사를 하고, 그 대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면 된다’ 라는 알쏭달쏭한 말만 듣게 됩니다. 이후 다른 아르바이트에서 그만 상대방의 이름을 잘못 읽게 되는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 때 길을 걷던 사람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이치로를 노려보는 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또 이름을 잘못 읽자 걸음을 멈춘 행인들이 이치로를 노려본 채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도 하구요. 결국 상대방이 제대로 된 이름을 가르쳐주고, 이치로가 이름을 제대로 말하자 걸음을 멈췄던 행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제서야 상대도 ‘대사’를 하고 이치로를 지나쳐가구요.
놀라운 마음에 주위를 살펴보다, 길에 서서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도 사실은 여기저기에 써진 대사를 읽었음을 확인한 이치로는 결국 정신과에 가 진찰을 받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차트에도 대사가 적혀 있고 의사는 그 대사를 읽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각종 사물이나 심지어는 TV 자막을 통해 나오는 대사를 읽기만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혼란스러워하는 이치로에게 바로 전 상대역은 얘기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사실 그 ‘역’을 맡았을 뿐이고, 많은 사람들은 평생 그 사실 자체를 모르고 살아갈 뿐이라구요.
‘말’이라는 건 자신이 생각하는 걸 솔직히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 이치로에게, 그것이 옳고 그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 대사를 말하게끔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상대는 오히려 ‘비밀’을 알게 된 이치로를 걱정합니다. 혹시 이것마저도 대사냐 묻는 이치로에게 ‘난 여지껏 이렇게 긴 대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 라며 웃어넘기는 상대는, 우리는 그저 인생의 엑스트라일 뿐이라며 서글픈 미소를 짓습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큰 역할이 찾아왔다며 기대하라는 상대의 큰소리에 덩달아 미소짓게 된 이치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대사가 배달되어 와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대사의 내용은 ‘집에 돌아와 TV를 켜니 알고 있는 자가 투신을 하려 한다’ 는 것. 서둘러 TV를 켜보니 아까의 상대역이 옥상에서 투신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으로 달려간 이치로는 그를 설득하려 애쓰지만,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다’ 라는 말을 남긴 채 그대로 뛰어내리고 맙니다.
자신은 대사를 하지 않겠다며 대본을 찢어버리는 이치로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대본을 들고 한마디씩 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뜻대로 말하라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라며, 내 인생의 주연은 나라며 소리칩니다. 하지만 이치로의 뒤에는 무언가 커다란 주사기를 든 누군가가 서고, 잠시 흑막이 찾아온 이후 이치로는 이상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자신의 집은 명패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뀌어 있고, 카페에서는 ‘정해진 대사를 하지 않는’ 그를 무시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지요. 먹는 것도 용납되지 않아 길거리를 헤매다 ‘같은 편’ 이라 생각했던 홈리스에게 받은 술병에까지 대사가 쓰여 있는 것을 확인한 이치로는 ‘세상에 대사가 없는 곳은 없다‘ 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엑스트라 사무실로 돌아가 대본을 달라며 애원하는 그에게 사무실의 사람은 ‘타다노 이치로의 일생’ 이라는 이름으로 된 어마어마한 양의 대본을 보여줍니다. 배우자, 자녀, 심지어는 죽는 날까지 정해져 있음을 확인하고 좌절하는 이치로.
타다노 이치로가 '타다노 이치로의 일생'을 대.본.대.로. 살아가는 등의 이야기가 조금 더 전개되지만, 혹시나 아직 보지 않으셨을 분들을 위해 굳이 말하지 않기로 합니다. 반전이 약간 들어가 있기 때문인데요. 말머리에도 말씀드렸지만 ‘출발 *** 여행스러운 글’은 언제나 영화 소개를 끝까지 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이유지만, 미리 말하기(= 스포일러, 네타바레)를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범인은 절름발이다!’ 덕분(?)에 제가 아직도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복선이 될 만한 내용은 일부러 빼고 설명했으니 찾아보실 분이 계시다면 꼭 한 번 찾아 즐기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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