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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01107 / 여름] 바다가 부르는 소리 by 에일레스

"휴가 어디가요?"

여름이면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사실 나는 딱히 휴가철이라고 해서 어디 가려고 맘먹는 스타일은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어디 놀러다녀본 경험이 많지 않다. 뭐 집안 분위기 탓도 있겠지. 스무살 넘어서는 친구들이랑 엠티는 종종 다녔으나 휴가때라고 해서 거창하게 계획세워서 어디 여행가고 그런 적은 거의 없다. 이건 성격 탓도 있을 것 같고..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어쨌든 여름이 되면, 휴가철이 되면, 어디론가 놀러갈 생각에 들뜬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이젠 나도 자연스럽게 묻는다. "휴가 어디로 가요?" 제주도, 싱가포르, 강릉, 거제, 남해... 사람들의 대답을 들으며 "우와 좋겠다!" 를 외친다.
그러면서 생각한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여름'은 '바다'와 동의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의어 정도는 되겠구나~ 하는.

그래서 이 영화를 골랐다.

그랑 블루
감독 뤽 베송 (1988 / 프랑스,이탈리아,미국)
출연 장-마크 바,로잔나 아퀘트,장 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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헙. 포스터가 너무 안예쁘잖아 -ㅅ-
그래서 이 포스터로 대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영화 포스터를.
한때 영화포스터 액자를 거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절, 수많은 벽을 장식했던 포스터다.
이 포스터에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다 담겨있다.
한없이 넓고 푸른(그래서 이 영화 제목이 <Le Grand Bleu>, 영어로는 <The Big blue>다.) 바다, 바다 속에 사는 돌고래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저 사람- 바다와 혼연일체가 되는 듯한 저 사람.
저 사람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자크(장 마크 바)다.

그리스의 작은 어촌에서 살던 자크는 잠수부였던 그의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는다. 어렸던 그는 바다와 돌고래를 친구처럼, 가족처럼 여기며 외롭게 자란다. 


※ 지금부터 영화 <그랑블루>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성 장면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자크에게 돌고래는 정말 특별한 존재다. 돌고래는 그를 늘 반겨주고, 그와 장난을 치고, 같이 바닷속에서 수영을 한다. 자크는 심지어 지갑에 돌고래의 사진을 넣어갖고 다니기까지 한다. 가족보다 더한 가족. 같은 영혼을 가진 존재.
게다가 이 영화에서 나오는 돌고래들, 진-짜 귀엽다 -ㅁ-


 


귀여우니까 또 한장 -_-*



어른이 된 자크는 어릴 때 친구인 엔조(장 르노)와 다시 만난다. 바다에 더 오래, 더 깊이 잠수하는 것을 경쟁하던 엔조는 세계 잠수대회 챔피언이 되어 있었고, 그에게도 대회에 참여하라고 초청한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잠수대회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더 깊이 들어갔다 나오면 된다. 바다 속에 미리 들어가있는
사람으로부터 얼마나 깊이 들어갔었는지를 증명하는 표 하나를 받아가지고 나오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알다시피, 수심이 너무 깊은 곳은 압력이 심해서 사람이 제대로 있을 수가 없다. 숨을 오래 참기 힘들다는 기본적인 사실은 물론이고 -_-


 

 


자크가 바다로 잠수하는 모습은 상세하게 묘사된다. 푸른 빛을 띠던 바다는 점차 어두워지고, 뭍의 모든 소리로부터 차단된 조용한 세상이 된다.



 

 


그런데 바다 밑에서 자크는 무슨 소리를 듣는다. 자신을 부르는 듯한 어떤 소리.
그것은 자크에게만 들리는 소리라고 생각된다. 바다가 부르는 소리.
위의 장면 외에도, 바다에 대해 자크가 느끼는 매혹은 여러 번 표현된다.


 

 

 

 

 

 

 

 

 

 

 

 

 

 


어쩌면 애초부터 자크의 영혼은 이미 바다 안에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몸만이 육지에, 이 세상에 남아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바다를 떠나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를 현실에 묶어둘 수 있는 매개는 현재로서는 단 두가지였다. 어려서부터의 친구 엔조, 그리고 단 하나의 사랑하는 여자가 된 조안나.
그 중에서도 엔조는, 그와 마찬가지로 바다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자크가 강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모습에 빗대어 보며 그는 자신도 엔조처럼 육지에서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무리한 잠수로 인해 엔조는 결국 자크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고, 자크는 엔조의 부탁대로 그를 물 속으로 '돌려보내'준다. 원래 그의 영혼이 있었을, 바로 그 곳.

그와 세상의 연결고리였던 엔조의 상실과 함께 이제 자크 역시 바다로부터 강한 부름을 받는다. 엔조를 보내고 돌아온 자크의 꿈에 휘황찬란한 바다의 풍경이 펼쳐진다. 꿈에서 깬 자크는 곧장 바다로 달려간다.



 

 

 

 

 

 

 

 

 

 

 

 

 

 

 

 

 

 

 

 

 


위의 글에서 자세히 설명은 못했지만, 보험사 직원으로 일하다 자크를 만나고 그와 사랑에 빠져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게 된 여자 조안나는 이 영화에서 '현실' 또는 '이 세상'을 의미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가장 번화한 도시인 뉴욕에서 왔으며, 그의 바다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왔다.
그러나 자크는 그녀를 떠나 바다로 가는 것을 택한다. 심지어 자신이 잠수할 수 있게 분리해주는 끈을 조안나의 손에 맡기기까지 한다. 조안나는 마침내 그를 보내기로 결정한다. 다른 세계에서 온 영혼을 사랑해버린 여자의 슬픈 결정.


 

 

 

 

 

 

 


마침 들어간 깊은 바닷가. 꿈에서처럼, 돌고래가 그에게 다가온다. 그도 돌고래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온 인생에 오직 바다만이 전부인 사람의 이야기를 신비하게 풀어낸 이 영화를 나는 <레옹> 이후에 뤽 베송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보게 됐었다. 어렸을 때 봤을 때는 뭔가- 깊은 바다가 한없이 매혹적으로만 느껴졌는데, 다시 영화를 보면서 조안나 쪽에 좀 더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다 -_- 자크 같은 남자를 만나면 안돼 ㅠ_ㅠ
그러는 한편, 조안나는 후회없는 사랑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점은 조금 부럽다.




아, 한가지 덧붙이자면,
나에게 여름은 '더위'와 또는 '장마'와 동의어다. '벌레많음'과 유의어고. -_-
(아 이런 낭만적이지 못한 인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