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따갑다 못해 뜨거웁던 여름의 어느 날, 남자 둘이서 길을 나섰다. 어렸을 적의 경험을 제외하면 태어나 처음으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남자 하나와, 나름 그 쪽으로 경험이 있어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 남자 하나가. 나름 대구에서 긴 시간을 있었지만 서구에만 살았고 시내에만 놀러 다닌 탓에 초행길에 가까운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점점 낯설어졌고, 그렇기에 버스 타고 20분, 걸어서 10분이라는 짧디 짧은 거리의 여정이 날 굉장히 설레이게 해주는 희한한 경험을 하며 도착한 곳은 대구 시민운동장. 그렇다. 우리는 피서를 대신해 야구를 보러 간 것이었다.
아주 잠시, 입구에 늘어선 닭파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열렬한 호객 행위에 정신을 놓고 있었다. 가이드를 자처한 남자는 '여서 잘 골라야 된데이, 잘몬 고르마 닭튀김이 아니라 기름 담은 닭 나온다' 라는 거창한 멘트를 덧붙이며 신중하게 닭과 맥주를 샀지만, 난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렇구나라는 추임새를 덧붙여주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지으며 온통 푸른색으로 치장한 사람들을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 이미 닭과 맥주는 중요한 것이 아녔으니까.
티켓을 끊고 야구장에 입장.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으나, 감탄사와는 무관하게 '대구 구장 진짜 작구나...' 라는 생각이 맨 처음 들었다. 야구장 군데군데 허름한 부분이 눈에 띄는 것은 둘째고, 그 작아보이는 구장을 보고 있자니 아쉬움만 배어나오더라. 여기저기 보이는 관람 초심자(?)들의 생각도 비슷비슷했는지 '야구장이 이래 작았나?' 라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여가 작지 큰 데도 많다' 라는 답변이 많이 들린 것으로 미루어보아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대구 구장의 홈인 3루측이긴 했지만 거의 외야에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경기 시작 사인이 울린 후 - 당시 - 매우 잘 나가던 배영수의 호투를 지켜보며 방금 사온 뜨끈~ 한 닭과 퓌싯! 소리로 반겨주는 맥주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1회초를 무난히 넘기고 찾아온 첫 공격. 쿵짝쿵짝 북소리와 선수별로 다른 응원 - 고맙게도 치어리더분이 그 때 그 때 맞는 응원 문구를 들어 보여주더라 - 을 목청껏 따라했더랬다. 1회부터 찾아온 찬스를 맞아 드디어 양신의 등장. 빠밤 빠밤~ 소리에 모두가 한 마음으로 외치는 위! 풍! 당! 당! 의 목소리 크기는 야구장이 울릴 정도였고, 그 찌릿찌릿함을 만끽하며 한 손엔 맥주를 한 손엔 닭을 들고 있던 난 타이밍 맞춰 터진 안타에 마음껏 포효하다 그만 한 입밖에 먹지 않은 닭을 떨어뜨리는 참사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아까운 마음에 다시 주워들었는데, 나와 비슷한 참사를 접한 누군가가 참사의 증거물을 집어들고 후후 불고선 다시 입으로 옮기는 광경을 보게 된 나는 진한 동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떨어뜨린 닭튀김을 후후 불고선 다시 입으로 옮기며 혼자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으허허헣.
닭과 맥주는 예상보다 금방 동이 났고, 5회를 넘긴 경기는 정체 현상을 겪고 있었다. 응원하느라 땀을 잔뜩 흘린 몸은 무언가 더 집어넣기를 원하고 있었으나 함께 한 가이드 양반은 별로 그런 기분이 아니어서 고생했다. 아니 배영수가 공을 잘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살고 봐야 되는 것도 중요한 것 아니냐는 제법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를 요구했지만, 우리의 가이드 선생은 경기 관람 전 스포츠토토라도 찍고 왔는지 요지부동. 결국 내가 가서 설레임을 두 개 들고 와 하나를 건넸더니 낼롬 쪽쪽쪽하드라. 에레이. 설레임 덕인지 목소리도 잘 나오고, 응원의 목소리가 잘 나와 그런지 점수도 나오고! 이건 설레임 덕분 아니냐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콧방귀를 뀌길래 신발을 벗고 허벅지를 한 대 차주었다.
엎치락 뒷치락 하던 경기는 결국 삼성의 마무리가 되었고, 나와 가이드의 짧은 피서도 마무리가 되었다. 승리를 가슴에 품고 웃으며 야구장을 나오자니 주변 사람들도 얼굴에 기쁨을 한가득씩 안고 돌아가더라. 경기가 끝난 이후 재고 처분을 위해 떨이로 파는 닭을 사 집으로 쩔레쩔레 들고 들어와 맥주 한 잔씩 더 하며, 계곡 찾아 바다 찾아 가는 것만이 피서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동질감을 나누며 더운 밤을 웃으며 보냈다. '여름하면 생각하는 것이 바다와 계곡뿐인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는 의도에서 글을 작성했으나 결국 직관 후기가 된 점은 다소 아쉽지만, 난 올 여름 피서도 이렇게 갈 생각이다. 비록 이번엔 내가 신중하게 닭을 고르고, 또 설레임을 얻어먹다가 발로 허벅지를 채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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