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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01106 / 타이밍] 가장 부적절한 타이밍 by 에일레스


흔히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배가 잔뜩 고픈 상태에서 야근까지 하고 퇴근해서 느지막히 집에 갔는데 아빠가 치킨을 사오셨을 때- 라던지, 심심해서 뒹굴고 있는데 마침 친구가 만나자고 연락이 온다던지!
어떤 일을 할 때,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좋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문제이긴 하다.

'타이밍'에 대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 작품을 생각해보다가 이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는 이것.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감독 민규동 (2008 / 한국)
출연 주지훈,김재욱,유아인,최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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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을 원작으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4명의 꽃미남이 일하는 케이크 숍을 배경으로 네 남자의 이야기를 유쾌하고도 섬세하게 묘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작 만화를 워낙 좋아해서 영화에 대한 걱정이 컸었는데 영화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영화 속에서 봤던 케이크들이 눈에 어른거려 동네 제과점에서 조각케익 두개를 사와서 흡입했다는 전설아닌 전설이 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임 -ㅅ-) (그리고 어쨌거나 영화도 좋았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이 바로 '타이밍을 지독하게 못 맞춘' 이야기라서, 여기에 소개한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선우(원작에서는 오노)는 진혁(원작에서는 타치바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가 심한 욕과 함께 제대로 차인다. 그러니까 문제는, 이때가 진혁이 여자친구에게 막 이별을 통보받은 직후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완전 안맞은 타이밍'.

이 때 이후로 다른 삶을 살던 진혁(주지훈)과 선우(김재욱)은 진혁이 케이크숍 '앤티크'를 차리고 파티쉐가 된 선우를 고용하게 되면서 다시 재회한다.
졸업식 날의 저 사건은 둘에게 다른 의미로 기억되고 있었다. 사실 저런 말을 할 만큼 모진 성격이 아니었던 진혁은 계속 그 일을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 어린 시절 유괴당했던 트라우마를 가진 진혁은 그 일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걱정시키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그런 그가 처음으로 남에게 험한 말을 내뱉은 것이 저 사건이었던 것이다. 
반면 심약하고 소심한 소년이었던 선우는 그 사건을 계기로 게이로서의 세계로 본격 진출해서 '마성의 게이'가 되어 있다. 자기가 좋아하던 남자와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하고 어머니에게 질투를 느끼는 자신에 대한 혐오로 자기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던, 진혁으로부터 거절당한 충격에 울던, 그는 이제 타고난 '마성'으로 게이건 노말이건 몽땅 꼬셔서 즐기고 버리는 사람이 된다. 진혁이 '너 그러다 언젠가 등에 칼 맞는다' 고 할 정도.

나이를 이제 꽤 먹어서인지, 지금 만나는 친구들은 10년 이상 만난 사이가 대부분이다. 나는 가끔 그들과의 첫 만남이나 옛날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예를 들어, 내 대학 친구인 토마토 양에게 얼마 전에 "너 기억나?" 하면서 헀던 얘기는 이런 거였다. 같이 발표수업을 하느라 뭔가 자료 조사를 하러 일요일에 하루종일 서울을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날 하필이면 토마토 양은 교회를 가야해서 오전 시간을 비울 수 없었고, 대학로에서 점심때 쯤 만나기로 했었다. 그리고 우리가 대학로에 도착해서 그녀에게 전화를 하는데, 하필이면 그때 갑자기 전화가 뭔가 불통이 되어서 우리가 토마토 양에게 걸었던 수십 통의 전화가 하나도 가지 않았던 거다. 세명이 합해서 거의 100통 가까이 걸었는데 전화가 한번도 안 울렸더란다. "나 그때 진짜 짜증났었어-" 라고 하며, 이제는 웃으며 얘기했지만, 그런게 바로 '나쁜 타이밍'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앤티크'에서 다시 만난 진혁과 선우도, 서로의 지나간 상처를 알게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진혁의 트라우마는 없어지지 않고, 선우는 여전히 '마성'을 떨치며 살겠지만, 이제 웃으면서 그 사건을 얘기할 수 있는 까칠한 나와 그 사건을 전혀 기억 못하는 -ㅅ- 토마토 양처럼, 진혁과 선우도 계속 예전의 그 사건을 웃으며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함께 살아갈 삶은 1℃ 정도 더 따뜻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을 남기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는 원작을 거의 충실하게 반영했는데도 작은 부분에서 조금씩 캐릭터를 바꾼 것도 좋았고, 초반의 화려한 뮤지컬 장면과 뒷부분의 무거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는 주지훈이 나온다. *-_-*
내가 만화 아닌 영화를 선택한 이유도 그냥, 주지훈 얼굴이 한번 더 보고 싶어서... -ㅅ-

(... 오늘의 결말도 어째 이상하구나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