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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01104 / 사진] 黒歴史. by 란테곰


'사진' 이라는 주제를 받고 한 달, 아니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을 고민했지만 머릿속에선 아무 것도 나와주질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평소엔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그닥 좋아하는 쪽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에 관한 추억이나 일상을 끄집어낼만한 것이 없다는 것도 이유이고, 이런 저런 이유로 사진 전반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것 역시 이유가 된다. 하다못해 백일 사진이나 돌 사진, 소풍 사진이나 졸업사진이라도 올려서 한 번 웃고 말 수 있으면 나으련만, 집에서 찍었던 많은 앨범들과 졸업 앨범이 하나도 남아있질 않으니 그조차도 어찌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다가온 마감일에 쫓기듯 글을 적어보지만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아 또 답답하고... 팀블로그에 참여한 이후 처음으로 '글을 쓸래야 쓸 수가 없으니 그만 두는 것이 맞나' 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어준, 참으로 무.서.운. 주제인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과거는 있게 마련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하고 다녔다든가, 살짝 거북스러울 정도로 자기 주장이 강한 옷을 입고 다녔다던가, 정말 답 안 나오는 헤어스타일을 했다던가... 이런 저런 이유로 다시 떠올렸을 때 얼굴이 붉어질 시절의 기억은 아까도 말했듯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저 모든 것을 지덕체 갖추듯 전부 다 가지고 있어 말 그대로 흑역사 한가운데를 걷던 내 무서운(?)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일련의 '증거자료'를 포함해 이해를 돕겠다.


 



언제였더라. 몇년도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2월 31일이었다. 밤새 놀고 술마시고 놀고 할 요량으로 - 애인 없는 - 몇몇이 모였던 날이었더랬지. 사실 이 사진의 포인트는 이해하기 힘든 삼색머리도, 무려 미용실에서 세팅한 삐쭉삐쭉도 아닌, 바로 사진 테두리에 적힌 말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해 보아도 '내가 정말 그랬나?' 라는 생각만 나게 하는 낯부끄러운 말들이 한가득 있어 뻘쭘함이 더해진다.

저 때가 아마 머리에 장난질(?)을 했던 마지막 시기였을게다. 노란색을 기준으로 여러 다양한 색으로 물들이기에 도전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나마 무난한 색들로만 장난질을 했다는 것을 참말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만약 핑크색 머리로 찍힌 사진이 남아있었다면... 으, 상상만 해도 무섭다.


 



2009년 지산 락페스티벌, 바세린 공연 맨 앞 줄에서 찍힌 전설의 그 사진. 미투데이에서 진행했던 이벤트에 당첨되어 1일권을 두 장 받았던 나는 지산으로 향하던 중 저 날다람쥐 옷을 입은 채 돈까스 집에 들러 돈까스를 먹고 나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옆에 있던 가족 손님들 중 아이들이 크나큰 관심을 보여주어 참으로 부끄러웠지만, 정작 사장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하여 '역시 프로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기도 했었다.

그 때, 나 뿐만 아니라 지산에 들렀던 많은 사람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진이 찍혀 기사로 올라갔었고, 개인적으로 매우 기분 좋은 기억인지라 흑역사라고 볼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날을 떠올릴 수 있는 사진은 저것이 유일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리라. 일이니 사진을 찍은 것은 백 번 이해하지만 저 크기로 올릴 필요는 없었잖아요 허정민 기자님.  
 
 

 



2010년 여름, 우쿨렐레 카페에서 갔던 대구 MT. 참으로 즐겁고 훈훈하고 술 많이 마셨던 1박 2일이었다. 날씨가 구리구리하여 걱정했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아 기분 좋게 놀고 올 수 있었던 이틀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날 받아온 일렉 기타로 연습을 좀 해보자 싶으면 우쿨이의 이 부분이 즐겁고, 또 연습을 해보자 싶으면 우쿨이의 저 부분이 새로워 아직도 제대로 건들지를 못하고 있다는 슬픔은 있으나, 55케이블도 헤드폰엠프도 구해놓았으니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생각만 있다. 사진 한 장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구나.

비단 저 때만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찍힌 사진은 대부분 저런 식인지라 무어라 얘길 할래야 할 수가 없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으니 건들지 마세요' 라는 느낌이 모락모락 묻어나온다 해야 할까. 나와 닮았다는 얘기 들은 양정모씨가 이 사진을 보면 기겁을 하시겠구만.


길을 걷다, 책을 읽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어느 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사진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넋을 놓고 오랫동안 바라보게 되는 사진들의 공통점은 색채가 강렬하거나 명암이 선명한 사진들이고, 풍경이나 사물보다는 인물에 촛점을 맞춘 사진 쪽이라는 것. 그 중에서도 특히나 어르신들의 삶이 담긴 얼굴의 주름을 솔직하게 찍어낸 사진들을 좋아한다.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즐거웁진 않아 비록 누군가에게 찍히거나 내가 찍은 사진은 많지 않지만, 저 사진 하나하나가 내 삶의 주름 역할을 하고 있진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이 다소 복잡해졌다.

인생에 있어 찾아오는 굴곡 하나하나는 대부분 자의보다는 타의로 생겨나는 것인지라 얼굴에, 몸에, 때로는 마음에도 깊은 고랑을 만든다. 오늘 또 하나의 굴곡을 억지로 억지로 넘어가며 불쑥,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