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내 졸업앨범들을 그닥 보는 편이 아니다.
처음 앨범 받아온 날만 내가 이렇게 나왔네, 내 사진이 여기있네- 하고 가족들과 함께 찾아보는 정도였고
그 이후에는 한두번 봤을까 말까..
내 졸업앨범들은 모두 먼지로 옷을 갈아입으며 한 구석에 잠자코 쌓여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보기 싫어하는 앨범은 초등학교 졸업 앨범이다.
그 앨범을 받았을 때부터도 싫었다.
커서 한번 꺼내서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여전히 싫더라.
대체 왜 그렇게 찍혔는지 모르겠는데, 고개를 갸우뚱하고 기울인채 헤- 하고 웃고 있다. 완전 동네바보 =_=
아니 사진이 그런 식으로 나왔으면 다시 찍거나 하는게 정석 아닌가?!
왜 그 사진을 그냥 앨범에 실었냔말이다 -_-
인터넷상에 가끔 'XXX 변천사' 하면서 연예인들의 졸업사진이 초-중-고-대 연대별로 죽 올라오곤 하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난 정말 유명해지면 안되겠다고. (음?)
아무튼 졸업앨범이라는 것이 다방면에서 골고루 사용되기는 하는 모양이다.
재작년에 결혼정보회사에서 전화왔을 때 뼈저리게 느꼈다..
여대에서는 졸업앨범 속 사진 보고 선 자리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듣기도 했다. (사실 여부는 모름)
졸업앨범이란 것은 어쨌거나 사람이 살아온 과거의 어떤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여기,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의 중학교 시절 졸업앨범을 보게 된 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졸업앨범에 적혀있는 남자친구의 옛 주소를 찾아 편지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미 죽은 사람인 그 남자친구에게서 답장이 온다.
영화 <러브레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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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때 활동했던 영화 동아리 모임에서였다.
일본영화 수입이 정식으로 되기 전이었는데, 선배들이 어디선가 불법 유통되던 비디오 테이프를 가져왔다.
선배들은 이미 그 영화를 많이 봤다고 했다.
그리고 그 몇번씩 봤다는 영화를 보며 꺼이꺼이 울었다;;
난 그때는 오히려 좀 감수성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던 그 선배 마음이 이해가 잘 안됐으니까.
'저 언니 왜 저래;;' 했을 뿐.
이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다시 봤는데-
이제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안타까움, 애틋함, 로맨틱함, 슬픔.. 같은 것을.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감정이입한 것은 남자 후지이 이츠키 쪽이었다.
중학교 시절,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보지 못했던, 자신과 이름이 같은, 순진하고 얌전했던 소녀.
그 소녀의 이름을 도서카드 뒤에 남기고, 소녀의 얼굴을 그리던 때의 그 마음.
전학가면서 소녀의 집에 찾아가 소녀의 얼굴을 그린 책을 내밀었던 마음.
(그걸 너무 늦게 본 여자 후지이 이츠키. 바보 ㅠㅠ)
그 소녀를 닮은 여자를 만나 사랑했을만큼의, 진짜 바보같은 남자.
어떤 기억은 절대 웃으면서 떠올릴 수 없다.
보기만해도 마음아픈 사진이 있듯 말이다.
남자 후지이 이츠키는 중학교 졸업앨범을 종종 꺼내 여자 후지이 이츠키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그녀를 닮은 와나타베 히로코를 만난 것은 단순히 닮은 것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지만)
아예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
히로코를 보며, 동시에 두 명의 여자를 봤을 그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사람은 참- 과거를 먹고 사는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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