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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01104 / 사진] 어떤 것도 증명하지 않는 사진이 by 빛바랜편지

 심란한 일이 있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그럴 땐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낮잠을 잤던 나머지 잠이 전혀 오질 않았고, 그제서야 마감이 10분 전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곡을 정해두어서 다행이지.

 디지털시대에 살고있어서일까, 첫 여자친구 이후로는 물리적인 사진을 함께 찍은 적이 없다. 당시 여자친구와의 사진은 쓰레기장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는 것조차 불쾌해서 완전히 태워버린 뒤 물에 개어 변기에 내려버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뒤로는 참 쉬웠다. 단지 삭제버튼 혹은 핸드폰 초기화만 하면 모든게 해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애버리는게 너무 쉬워진 나머지 손을 대기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가장 짧게 만났지만 가장 강한 흔적을 남긴 그녀와의 사진은 차마 볼 수도, 지울 수도 없어 핸드폰을 꺼둔 채로 서랍 깊숙히 넣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결혼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드디어 사진을 지워야겠다고 다짐하고서 핸드폰을 켰다. 당시에 잃어버렸던 핸드폰을 찾은 것이라 문자며 사진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의식처럼 그것을 주욱 훑어보았다. 사진. 이미 법적으로 남의 여인이 된 사람의 사진은 나와 함께 웃고있었다. 사진은 그 시간 그 장소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지금 그 사진은 어떤 의미도, 어떤 시간도 살려내지 못했다.

 포맷을 하고나서, 후련해졌다.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던 그 사진은 그렇게 사라졌다. 현실의 화상을 모사한 것 뿐인 사진. 의미를 부여하려면 끝도 없지만 유효기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사진이라는 것이 참 낯설게, 혹은 두렵게 느껴지는 밤이다. 


 


마지막 날에 우리 마지막 날에 
네가 지어준 보여준 그 표정을 나는 기억해 
많이 연습한 하지만 역시 어색한 
네가 지어낸 꾸며낸 그 표정을 나는 기억해 

그보다 전에 우리 좋았던 날에 
네가 건네준 쥐어준 그 사진이 아직 내 곁에 
많이 연습한 하지만 역시 어색한 
너의 미소는 꼭 그 날 너의 마지막 표정 같애 

날 보며 웃고 있어 아냐 넌 렌즈를 보고 있어 
원서에 붙일 3x4 사이즈에 맞춰 
널 많이 좋아했어 아직 내 지갑 속에 있어 
어떤 것도 증명하지 않는 사진이 

날 보며 웃고 있어 아냐 넌 렌즈를 보고 있어 
원서에 붙일 3x4 사이즈에 맞춰 
널 많이 좋아했어 아직 내 지갑 속에 있어 
어떤 것도 증명하지 않는 사진만이 내게 남았어 
다른 모든 사진들은 그날 모조리 다 태워 버렸으니 
세상에서 나 하나만을 보며 웃던 순간들 

특별하다 믿었어 넌 내게 특별함이었어 
스스로를 설득할 필요도 없었어 
널 많이 좋아했어 아직 내 지갑 속에 있어 
어떤 것도 증명하지 않는 사진이 
여전히 웃고 있어 
여전히 웃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