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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01103 / 몰입] 의도했던 것 따윈 잊은 지 오래다. by 란테곰

게임을 하더라도 흔히들 말하는 만렙 한 번 제대로 찍어본 적이 없고, 책을 읽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은 책이 드물며,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도 - 아버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을 인용하자면 - '공부하는 티라도 좀 나게' 한 적이 없는데다, 그나마 2년 된 우쿨렐레를 제외하곤 진득하게 붙잡고 있는 취미도 거의 없는 내가 몰입이라는 주제를 꺼낸 이유는 바로 '몰입의 역기능'에 관해 말하려 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에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못 하는 사람인 나에겐 무언가에 빠져드는 것이 매번 유쾌한 경험이지는 않았고, 더군다나 그 몰입의 대상이 연애인 경우엔 더더욱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기에... 난 '몰입이라는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아니 적어도 나쁘지 않은 어감의 단어인 것만은 아니다' 라는 자세로 한 번 신나게 글을 한 번 써보겠노라며 이 주제를 꺼냈던 것이었는데, 우습게도 지난 한 달 여가 생활에 푸욱 빠져있었던지라 정작 마감 전날이 되어서야 정색하고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한 나란 놈이 여기 있네. 그 여가 생활은 내일 저녁에도 예약이 잡혀있고 도저히 빼먹을 수가 없는 상황인데다, 요즘 동사무소에서는 그놈의 보육료 뒷처리에 죽을 똥 살 똥 하느라 글을 쓰고 자시고 할 경황이 없기에 그저 타는 똥줄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본다. 의도했던 것 따윈 잊은 지 오래다.




처음으로 공부에 매진(?)했었던, 머리 어깨 무릎 발까지 160 즈음이던 중 3때였다. 난생 처음 독서실이란 곳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친구 한 녀석과 평범한 동네 독서실이 아닌 시내에 있던 대학교 독서실에 왔다갔다 했더랬었다. 그 친구 녀석은 평소에 나와 시험 성적도 등수도 거의 엇비슷했지만 용인에 있는 고등학교를 장학금 받으며 다니는 것이 목표였고, 난 수원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 목표였기에 나름 불이 붙어 열심히 공부를 했더랬다. 내가 못하고 싫어하는 수학을 그 녀석은 잘 했고, 국어와 국사, 영어는 내가 아주 조금 더 나았기에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갖고 시작한 독서실행이었는데... 1주일 즈음 지나자 그 녀석은 중학교 커리큘럼에서 기억나고 알고 있는 것은 교집합이 유일한 내게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가르치길 포기했고, 난 그 녀석에게 '은주춘추전국 진한위진남북조 수당송원명청' 을 토끼야에 붙여서 가르치는 것으로 1주일을 때우는 훌륭한 가라(!)선생의 역할을 자처했었다.


독서실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뒷자리와 건너편 자리엔 어여쁜 누님이 늘 같은 자리를 골라 앉아계셨고, 독서실 행 사흘 째에 그 사실을 깨달은 난 내가 골라앉던 자리가 명당이라는 것에 감사하며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까.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싶으면 허리를 주욱 펴고 팔을 하늘로 뻗어 몸을 비트는, 흔히들 말하는 기지개를 켜는 시늉을 하며 시각을 환기시킨 후에 다시금 책에 머리를 박곤 했었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 녀석도 언제부턴가 나와 같은 자세로 기지개를 켜게 된 것은 아마도 나와 같은 이유였겠지. 차마 쪽지 한 장 빠나나우유 하나 갖다놓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순수한 시절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아리땁기 그지없는 누님들은 우리가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한지 1주일 즈음이 되었을 때부터 보이질 않았고, 우리의 활활 타오르던 독서실행에 대한 열정도 그 슬픈 현실에 발맞추어 조금씩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이처럼 시작은 창대했으나 1주일 이후부터 미미하기 그지없던 우리의 독서실행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 한 달 가까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시내에 있던 오락실 때문이었다.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그 때 그 때 조금씩 풀어줘야 다시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지 않겠냐는 내 유혹에 여지없이 흔들려버린 친구 녀석과 나는 가는 길에 한 판, 밥 먹으러 나가는 길에 한 판, 돌아오는 길에 한 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판... 그렇게 잠깐씩 들러 놀고 오게 되었는데, 처음엔 누구나 말 하는 '진짜 딱 한 판'이었지만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나 급기야 한 번 들를 때 마다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어 정작 공부할 시간이 모자란 지경에 놓이게 되었고 우린 그제서야 작금의 사태에 통탄하며 독서실행을 포기하고 각자의 집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그 때는 이미 연합고사 사흘 전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유혹을 욕하며 단어 하나라도 더 집어넣자고 바락바락 악을 썼었다.



두 달 뒤, 친구녀석은 목표로 했던 3년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하는 것에 성공했고, 난 660명 중 330등이라는 등수를 마크하며 수원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다시 용인에 올라오게 된 첫 해, 친구 아들 돌잔치에서 우연히 만난 그 녀석은 그 때의 일을 까맣게 잊었다 했다. 그 녀석은 잊었지만 난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 뒷자리와 건너편 자리에 앉았던 어여쁜 누님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사족.

잊은 지와 잊은지, 기자들도 제대로 못 쓰는 띄어쓰기.
하나 글 보고 양정모란 사람 찾아봤는데... 내가 봐도 닮았더라.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