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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01103 / 몰입] 대가의 매너리즘, 게으른 독자의 변명 by 김교주

박완서 선생의 글 가운데 몰입도가 가장 높았던 한 편을 꼽으려니 쉽지 않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의 성정에 더해진 맛깔나는 문체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평에는 개인의 취향이 담뿍 담겨 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 남자네 집>을 골랐다. 이 책이 3월의 한 권, 으로 선정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 책은, 내가 도저히 몰입할 수 없었던 선생의 유일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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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한국 전쟁이 만들어낸 피폐한 삶과 전후 세대의 비참함을 묘사(<엄마의 말뚝>, <나목> 등등)하는 데 뛰어난 만큼이나 그 가운데서도 피어나는 젊음의 냄새를 끄집어 내는 능력 또한 탁월해서(<나목>은 이 측면에서도 대단한 작품이다), <그 남자네 집>(이하 <그 남자>) 역시 이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갖춘 작품으로 주인공은 자신의 지난 이야기 가운데 아련한 옛 사랑을 끼워넣고 있다.

문제는, 이 책이 선생의 다른 여러 작품들과 유사한 구석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크게는 한국 전쟁 당시 서울,라는 시공간적 배경에서부터 세밀하게는 서울대 입학, px 근무, px에서 만난 남자와의 결혼이라는 점에 이르기까지 <그 남자>에는 선생의 충성도 높은 독자라면 다른 책 어디에선가 분명히 접했을 법한 이야기가 너무도 많이 들어가 있다. 해서, 스물 여섯, 처음 <그 남자>를 접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선생에게-물론 나 혼자서- 성질을 버럭 냈었다. (평소 같으면 완독하는 데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을 책을 무려 1주일 동안 아주 지루하고, 재미 없게 읽었다는 건 비밀이다.)

그 때 나는 학부생이었고, 교양 과목의 과제 가운데 하나가 현대문학작품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어찌나 격하게 분개했던지 매너리즘에 빠진 대가 운운해가며 보고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서른 즈음이 되었을 때,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선생의 이야기는 여전히 특유의 찌르는 듯한 날카로움으로 펼쳐져 있었고, 많은 내용들이 오히려 이전보다 더 수월하게 기시감을 느끼게 할 만큼 눈에 띄었다. 그러나, 한 문장 한 문장을 공들여 씹어 읽는 동안 내가 발견한 것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선생 나름의 방식이었다.
선생의 많은 글을 관통하는 감성은 분명 전쟁에서 비롯된 결핍과 그 가운데 벌어지는 애틋함이지만 각각의 글들은 유년에서 청년으로의 성장(<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청년기에서 기혼 여성으로의 성장(<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이라는 시간적 관점에서의 성장은 물론 소녀에서 여성으로의 성장(<나목>)이라는 식으로 세분화되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바라본 전쟁의 상처(<엄마의 말뚝>)를 다루기도 하는 등 모든 글에서결코 하나의 시선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그 남자>는 감히 말하건대 연애 소설의 관점, 요컨대 사랑을 관점으로 쓰여진 책이다. 
선생 스스로가 "연애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집필"했다는 이 책을, 다른 책들을 읽을 때와 다를 것 없는 마음으로대하고 있었으니 몰입도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던 게다. 

불행히도 처음 이 책을 접할 때, 나는 바로 이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매력을 알 수 없었을 수밖에. 결국 매너리즘이 어쩌고 하는 말은 대가 박완서가 아니라 게으른 독자인 내게 해 주었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 부끄러운 일이다.




사족: 다들 위대한 탄생 보나? 김태원 멘티였던 양정모 보면서 김태화를 떠올린 사람은 나뿐이야? 왜 노래하는 것까지 비슷해?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