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지갑이 비지 않도록 하셨다. 아버지께서 돈을 허투루 쓰지 않으시기 때문에 어머니의 신뢰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름지기 지갑이 빵빵해야 기가 산다'라는 어머니의 원칙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지당한 말씀인가.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밖에 나가기도 싫고 사람을 만나기도 싫다. 혹여 만나게 되더라도 그 자리를 당당하게 즐기지 못하고 마음 한 켠이 불편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내 경우엔 매월 용돈을 받고 살아간다. 아직 정해진 소득이 없는 탓이다.
용돈을 받은 지 열흘이 조금 더 지난 한 달의 중순 쯤에는, 핸드폰 요금이 빠져나가 살짝 위축된다. 학생에게 만만찮은 스마트폰 요금은 압박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허나 남은 돈은 아껴쓰면 될 것이라 위로하며 불필요한 소비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 술과 커피로 허세를 채운다.
월말이 되면 사람을 만나기가 귀찮아진다. 내 밥값과 군것질도 아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모임이나 약속에 나가더라도 가슴을 쭉 펴지 못하고 추가주문에도 못내 조심스럽다. 사람이 쪼잔해지는 동시에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고난의 1주일을 보낸 후, 용돈날이 다가온다. 그동안 참아왔던 소비생활을 시작한다. 먹고싶은 것을 먹고, 마시고싶은 것을 마시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 이 블로그에도 끄적였던 수많은 고민과 걱정, 우울한 마음 대부분 사람들을 만나 먹고 마시는 동안 해소된다. 남은 걱정들은 문구류 등 내 특이한 소비성향에 투자하며 말끔히 해소된다.
이번 달에는 지출이 적어 돈 쓸 여유가 있을 것 같다. 사고싶은 것을 적고 우선순위를 정해야지. 하지만 우선순위를 정하는 동안 보름쯤이 휙 지나가버리고, 나는 결국 그 자리에 있다. 대부분의 예산을 먹고 마시고 불필요한 소비에 붓는 것으로 끝난다. 다음주 용돈이 들어오면 나는 또 행복하겠지.
앞서 말한 것처럼, 내 모든 염려는 먹고 마시고 문구류를 사는 과정에서 정화된다. 하지만 그것도 잔고가 넉넉한 월 초 뿐이다. 따라서 내 위로는 용돈날이다.
아, 결국 모든게 돈이란 말인다. 속물같아져서 우울해진다.
치킨을 사준다니 나가봐야지. 내 돈 내지 않고 행복해질테니까.
'201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03 / 몰입] 대가의 매너리즘, 게으른 독자의 변명 by 김교주 (2) | 2011.03.23 |
---|---|
[201102 / 위로] 믿어요, 나쁜 놈들은 꼭 대가를 치를 거라고. by 에일레스 (0) | 2011.02.27 |
[201102 / 위로] 당연한 것을 당연케 생각지 못한 자신이 안타까웁다. by 란테곰 (0) | 2011.02.25 |
[201102 / 위로] 당신은 제게 항상 위로였습니다. by 김교주 (0) | 2011.02.23 |
[201101 / 망각] 잊었던 그 사람이 생각나요, DJ by 빛바랜편지 (1) | 2011.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