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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01102 / 위로] 믿어요, 나쁜 놈들은 꼭 대가를 치를 거라고. by 에일레스

※ 본 글은 영화 <러블리 본즈>의 결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러블리 본즈>를 본 것은 김길태 사건의 피해자, 부산에서 실종된 여중생의 시체가 발견된 날이었다. 아직 범인이 잡히기 전이었고, 실종된 여중생(이라고 하지만 중학교 입학 전인 갓 초등학교 졸업한 어린 소녀였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던 시기였다. 결국 죽은 채로 발견된 소녀에 대한 뉴스를 읽고 조금 무거워진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갔었다.

러블리 본즈
감독 피터 잭슨 (2009 / 영국,뉴질랜드,미국)
출연 마크 월버그,레이첼 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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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4살의 수지 새먼은 행복한 소녀였다. 짝사랑하던 잘생긴 소년이 "넌 정말 아름다워, 수지 새먼." 이라고 말해주며 처음 데이트를 신청한 날, 기쁨에 넘쳐 집에 돌아가던 수지는 이웃집 아저씨에게 살해당한다.
우리나라에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은 저승에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수지는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하늘나라와 현실의 경계(In-between)에 머무른다.

수지의 아빠는 딸의 죽음에 집착하며 범인을 추적하는데 골몰하고, 엄마는 모든 것을 잊고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애쓴다. 엄마는 결국 집을 떠나버린다. 그러는 동안 살인자는 태연하게 일상을 산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수지는 살인자인 하비에 대한 분노를 불태운다. 
죽은 소녀도, 살아있는 가족도, 죽음 그 자체에 매달려 전혀 행복하지 않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것이랄까.
결국 수지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고, 범인인 하비 역시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고, 수지의 가족은 다시 화목함을 되찾는다. 수지의 여동생 린지는 수지보다 더 나이를 먹고,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어른이 된다.

모두가 다시 스스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들이 수지를 잊은 것이 아니다.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그들 사이에는 수지의 죽음을 계기로 한층 돈독해진 유대감이 남아있는 것이다. ('러블리 본즈(Lovely bones)'가 그런 뜻이라 한다.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아름다운 유대감.)

범인인 하비는 의외의 상황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상당히 담담하게 하비가 죽는 장면을 그대로 담아낸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범인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대학 다닐 때 시사토론 학회 활동을 했었다. 토론의 주제는 보통 그 주에 있었던 여러 사안들에 대한 것이었지만, 가끔씩 진짜 민감한 사안들을 주제로 올려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 민감한 주제들 중 하나가 '사형제도'였다.
다들 알다시피 사형제도에 대한 논의는 정말 끝이 없다.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처단할 권리가 있는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대응은 너무 미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성이 지배하는 부분이 있나 하면, 가끔 정말 끔찍한 범죄를 접했을 때 불같이 일어나는 분노에서 쏟아져 나오는 감정적인 부분도 있어서 말이다.

그때 내가 어떤 입장에서 말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_-;
그리고 지금은 사형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범죄를 저지른 자는 정당하게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것이 피해자에게, 피해자의 가족에게 하나의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 '좋은 곳'에 갔을 거라고, 나쁜 놈들은 꼭 처벌을 받을 거라고.
그러니 이제 힘을 내고, 죽은 사람 몫까지 행복하게 열심히 살자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작년 말 영화평론가 심영섭 님의 트위터에서 '치유의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말에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하기도 했다. (물론, 순위 안에 들지는 못했다. -ㅅ-)

여전히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끔찍한 기사가 쏟아져나오는 세상에 살고있다. 사람들은 그 끔찍한 일에 분노하고 목소리 높여 엄중한 처벌을 주장한다. 나도 그 감정에 휩쓸릴 때도 있다. 아 정말 쳐죽여도 시원찮을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든, 그 나쁜 놈들은 처벌을 받게 될 거라고 믿는다. 반드시.
그게 하늘의 법칙이니까.




 


내 성은 새먼, 물고기와 같아요.
내 이름은 수지고요.
1973년 12월 6일, 14살 때 살해당했어요.
나는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났어요.
모두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요.

My name is Salmon, like the fish.
First name, Susie.
I was 14 years old when I was murdered on December 6, 1973.
I was here for a moment, and then I was gone.
I wish you all a long and happ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