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남독녀 늦둥이 외동딸이라는 가족 구성원 내부에서의 위치에 소아천식 발병 등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야외 활동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단절된 이후부터 내 제일 친한 친구가 책이었다는 건 언제 생각해도 축복이다.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책이 아니더라도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불행히도 그 많은 놀이의 대부분이 컴퓨터를 위시한 전자기기에 의존하게 마련이라는 점이 마음 아플 뿐이지.
모친께서는 언제라도 내게 책을 사 안기시는 걸 주저하시는 법이 없었다. 많은 책이 전집류였고, 가끔은 사촌 오빠들에게 물려받은 책을 읽기도 했는데 개중에 어린 왕자가- 내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는 어린 왕자가 끼어 있었다. 에이브 전집, 소년 소녀 세계 명작 등등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지금 생각해도, 여덟 살의 내게 달과 6펜스는 무리였다.)
나는 이처럼 지적 허영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충만해질 수 밖에 없는 정황에서 자랐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내가 제일 처음 한 일은 도서관 한 칸을 채우고 있던 민음사 등등의 출판사에서 내놓게 마련인 세계 명작 전집을 모조리 읽는 거였다. <신곡>, <부활>, <안나 까레리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닥터 지바고>, <죄와 벌>, <적과 흑>.... 고백하건대 지금은 내용조차 희미한 이 고전들을 그 시기에 그야말로 읽어 "치우고", 읽다 읽다 지쳐서 더 이상 소설 따위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 이르렀을 때 박완서 선생의 글을 만났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포함, 여러 편의 수필이 묶여 있던 산문집을 읽고 나서 새삼 독서에 대한 의욕을 회복했었다. 그러나 그 때는 몰랐다. 앞으로 남은 세월, 내가 선생의 글을 얼마나 사랑하게 될지.
2010년 여름 끝무렵.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 더위와 함께 스멀스멀 쪄 올라오는 옆구리와 팔뚝의 나잇살에 좌절하고 있던 내게 그가 전한 장기 출장 소식은 반쯤은 출구였고 또 반쯤은 감옥이었다. 몰려드는 고민, 근심, 걱정, 복잡한 심경을 감출 길이 없었고 굳이 그런 길을 찾으려 들지도 않았다. 감정선을 드러낼지 말지를 놓고 전전반측, 끊임 없이 이어지던 다툼. 언성이 높아지고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 누구라도 찔러죽일 것처럼 기세등등해져 있던 그 때 그가 내게 이 책을 선물했다. 아무런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읽고 싶었던 책을 선물받았다는 데서 오는 안정감에 기대어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하게 내려앉았다. 모진 풍파를 겪고 이제는 삶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나이에 닿은 선생의 글은 여전히 매섭고 칼같이 끊어내는 필치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인생 막바지에 이르른 자신을 인정하고 순순히 거기에 삶을 내맡긴 노년의 여유가 있었다.
제목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산문집이다. 총 3부로 나뉘어 첫 파트에서는 소소한 선생의 삶 이야기를, 두번째에서는 선생이 읽은 책 이야기를, 마지막 파트에서는 고인들께 드리는 추모 산문을 싣고 있다.그리고, 그에게는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그와 헤어질 결심을 굳혔다.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추모 산문들 속에서 내가 얻은 건, 이별 이후에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자신의 젊은 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화가, 문단에 들어선 이후 언제고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준 스승, 종교에 귀의한 자신의 묵묵한 멘토였던 신사의 기억을 남긴 추기경.... 그 분들과의 별리 앞에서 선생은 담담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어쨌든, 초연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어쨌든,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남은 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었다. 나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다시 한 번 이별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테니까. 분명히, 견딜 수 있을거라고.
그리고 그가 출국하던 날, 아주 쿨하고 멋지게(라는 건 물론 왜곡된 기억이다.) 그와 이별했다. 마음 속에는 여전히 선생의 산문집이 남아 있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내 자신에게 말해주면서 그를 보낸 건 2010년의 가을이었다. 그를 그렇게 떠나보내고서도 한동안 나는 선생의 산문집을 다시 읽으며 위로받곤 했다. 괜찮아, 괜찮아. 네가 선택한 거야. 할 수 있어. 잘 하고 있어.
선생의 글은 중학생 시절 그 때도, 고교 시절의 압박 속에서도, 20대의 격랑 속에서도 늘 내게 위로였다. 단 한 번도 위로가 아닌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10년의 그 가을, 그 겨울. 그 때의 위로야말로 선생이 내게 주신 최고의 위로였다. 다시 한 번 마음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감사를 표하게 된다.
멀고 복잡해 보이는 길을 돌고 돌아서, 나와 그가 다시 같은 곳을 보기 시작했다는 건 사족.
글의 구성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나 그냥 발행하기로 했다는 건 두번째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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