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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1906 / 주말] 남들처럼 by 란테곰.


내가 처음 '남의 돈' 을 받으며 했던 일은 주유소였다. -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를 기르던 동네의 특성 상 우리집, 혹은 친구네 집 일을 거들며 용돈 수준도 안 되는 돈을 받았던 일들은 없던 것으로 친다. - 6시 출근 6시 퇴근, 월 2일 휴무. 분식집에 시킨 점심밥을 먹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순번을 매겨서 밥 먹다가 뛰어나가 손님을 받았더랬다. 그래서 주유소에서 일할 적엔 면을 시키면 안 된다는 얘기가 우스갯소리처럼 퍼져있을 때였다. 당시 한 달에 이틀 쉬던 나에겐 추가 휴무는 말할 것도 없고, 그저 일하던 중에 밥 먹다 뛰쳐나가던 삶이 너무나도 싫었더랬다. 난 '남들처럼' 온전히 자기 점심 밥을 챙겨먹을 수 있는 그런 직장을 꿈꾸게 되었다.


그 뒤로 수많은 알바를 전전했다. 하지만 어디든 휴무 일수도, 밥 먹다가 불려나가는 것도 엇비슷했다. 비 오는 날 갑자기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죽을 뻔한 경험을 몇 번 하고,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 탑차가 아닌 10톤짜리 카고차에 실려온 라꾸라꾸 침대가 젖을까 미친듯이 달려들어 비를 맞으며 짐을 부리고, 비 오는 날 도로 통제를 하다가 갑자기 달려드는 차를 피하기도 하면서. 온전히 자기 점심 밥을 챙겨먹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에 비 오는 날 비를 맞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꿈이 덧붙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휴일이 늘어나길 바라는 것은 꽤나 먼 얘기였다. 


알바를 전전하다 처음 들어간 직장은 택배 터미널이었다. 밤에 출근, 아침에 퇴근. 일요일 새벽에 퇴근하면 월요일 밤에 출근하고 거기다 공휴일도 쉬게 되면서 휴일이 갑자기 확 늘어났다. 처음엔 그게 너무 좋았다. 남들처럼 온전히 내 밥을 챙겨먹을 수 있고, 비 오는 날도 밥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하는 등의 경우만 제외하면 비를 맞을 일도 없었다. 그렇기에 몸이 고된 것이야 적응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휴일이 있으면 그 다음 날은 일이 엄청 많다는 것이었다. 매번 일이 많은 월요일, 공휴일 다음 날 등의 경우는 그래도 버틸만 했지만, 문제는 명절이었다. 8시 출근 - 6시 퇴근이 보통인 평일과는 달리 명절 열흘 쯤 전부터 8시 출근 - 8시 퇴근이 되더니 10시, 12시, 급기야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일이 끝나기도 했다. 집에 갔다 오는 시간동안 차라리 잠을 더 자겠다며 회사 수면실에서 잠들고 일어나 다시 일을 하다 손목과 어깨가 나갔다. 쉬는 날이 다가오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오히려 그 다음 날 일할 걱정을 먼저 하게 되었다. 


이후 차단기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을 적엔 '진짜 남들처럼' 밥 먹고 '남들처럼' 쉬게 되었다. 낮근무, 주 5일, 회사 가까움, 셔틀 버스도 있었고, 영업과 사무직까지 포함하면 300명 정도가 일하는 큰 회사였다. 말이 주 5일이지 토요일 특근은 강제에 가까웠고 한 달에 OT 50시간은 일상이었던 회사였다. 얼른 적응도 해야 하고 돈도 더 벌 수 있을테니 OT가 많은 것은 나쁘지 않다 생각했는데, 첫 월급을 받아보고 예상보다 적은 액수에 매우 큰 실망을 했었다. 이럴 거면 토요일 특근을 할 이유도 필요도 의미도 없다고 여겼지만 면접을 볼 적에 우리 회사는 특근이 많다는 말에 예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한 것이 족쇄가 되어버렸다. 주 5일, 최소한 격주라도 확실히 쉬고 싶다. 내 주말을 챙겨먹고 싶다는 것으로 욕심이 또 커졌다. 


다음에 들어간 곳은 치킨 프렌차이즈였다. 격주 토요일 근무, 그나마 토요일은 오후 1시 쯤이면 일이 끝나던 곳의 물류직이었다. 회사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출근 시간이 빨랐기에 아침 식사도 제공을 해주고, 커피 자판기도 공짜로 사용할 수 있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도 괜찮았고, 새벽 6시에 출근해야 하는 격주 토요일엔 우리 동네까지 픽업도 와주었다. 격주로 일하는 날을 제외하면 '남들처럼' 충분히 주말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겨 일을 그만 두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꽤 아쉬운 직장이었다.


다음 직장은 과연 얼마나 '남들처럼' 주말을 누릴 수 있을까. 눈은 높아졌고 현실은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