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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1905 / 성장]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 by 란테곰.



특정 장르의 글이나 만화, 게임 등등에서 주인공이라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비슷한 특징이 있다. 우선 부모님 혹은 지인이 동종 직업 종사자였기 때문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거기에 노력이라고 쓰고 우연이라고 읽는 과정을 통해 겁나 짱센 무기나 능력을 얻게 된다. 게다가 마침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의 무리를 처단하기로 마음을 먹거나 내가 천하제일이라고 외치며 세상을 누빈다. 그러다 좌절도 한두번 겪고, 이별도 겪으며 자라난 뒤 마침내 내가, 혹은 우리가 겁나 짱센 사람이 된다- 가 대다수 주인공의 시작부터 끝까지다.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몇몇 조건이 있다. '우주인' 등의 능력 있는 혈통을 타고 나거나 '무슨무슨 열매' 를 먹거나, 어떤 산에 사는 기인에게 1갑자의 공력을 넘겨받거나, 하다 못해 매번 주변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등 우연이 만들어주는 기적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며 '주인공'의 최소 조건을 갖추게 된다. 세상 모든 삶이 크고 작은 위기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삶이지만, 꿈을 포기해야 하는 둥, 목숨을 걸어야 하는 둥 극단적인 위기를 맞음에도 어떻게든 그걸 극복해내는 것이 주인공이다. 


그렇게 한 번 겪고 나면 다음엔 더 짱센 누군가가 등장하고, 물리치고, 또 등장하고 물리치고를 반복하며 점점 더 겁나 짱세진다. 흔히들 말하는 드래곤볼식 구성, 파워 인플레이션이 생긴다. 어제의 겁나 짱셌던 상대 혹은 동료가 오늘 갑자기 다른 누군가의 등장으로 인해 약하다고 느껴지거나 잊혀지는 상황이 생겨난다. 하지만 주인공은 순식간에 약해지고 조금씩 잊혀지는 그들과는 다르다. 더 쓸모있고 효용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어느 순간 갑자기 그 능력이 개방된다. 혈통이, 능력이, 우연이 만나 순식간에 성장을 이뤄낸다. 그걸 통해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저 단순히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대다수의 사람에 비하면 너무나도 빛나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파워 인플레이션에서 도태되거나 벗어나지 못하는 누군가가 생겨난다. 어쩔 수 없다. 조건을 갖추지 못한 누군가가 조건을 갖춘 사람과 동등하게 성장하는 경우는, 특정 몇몇의 '노력하는 능력'을 통해 성장한 케이스 외엔 없다. 시작할 땐 킹왕짱이었는데 어느덧 잊혀져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 로 마무리되는 누군가는 어디에든 있다. '조연 미만 군중 이상' 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그들은 결국 주인공들을 돋보이는 역할, 뻔한 대사를 하는 것으로 그들의 성장을 끝낸다. 


한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는 어린 시절 겁나 짱센 친구들을 뭣도 모르고 벗겨 먹으려다 다행히 친구가 되었고, 그 덕(?)에 죽었다 살아나서까지 그들의 싸움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걱정하는 직관러가 되었다. 하늘도 날고 막 뭐도 쏠 수 있지만 그걸 좀 더 잘 하는- '지구인 최강' 코 없는 친구에게 밀려, 재배맨의 자폭 공격에 쓰러진 모습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집중을 받았던 때로 기억되며 삶을 마무리했다. 이번 달 주제가 성장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른 캐릭터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열심히 노력도 했고 성장도 했으나 그 차이가 너무나도 커 다른 사람들에 밀리고 잊혀진 그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