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9년

[201905 / 성장] 어른이 되고 싶어? by 에일레스

 

얼마 전 친구랑 대화하다가 친구가 물었다. 넌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면 언제로 가고 싶어?

내 대답은 "고 3 수능 직후" 였다. 일단 수능을 본 이후여야 했다. 또 그 학창 시절을 지나올 순 없어.. -ㅅ- 그리고 대학을 아예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럼 뭔가 인생이 달라질 것 같은 생각? ㅎㅎ

 

생각해보면, 이제 어른도 한참 어른이 된 이 나이에는 이렇게 '과거의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달랐다. 장래 희망이 뭐냐, 커서 뭐가 되고 싶냐, 크면 뭘 하고 싶냐, 같은 질문을 주로 받았으니까. 그때는 정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도 나름의 즐거움은 있었지만, 어른이 되면 좀 더 많은 자유로움이 주어질 것 같았으니 말이다. 물론 어릴 때에 비해 어른이 되니 자유로워진 것은 맞다. 그만큼 책임질 일도 많아졌다는게 문제겠지.. ㅎ

 

 

 

 

(Big, 1988)

 

네티즌 9.20 (627)  평점주기

개요 코미디, 드라마 1989.07.15. 개봉 104분 미국 12세 관람가

감독 페니 마샬

 

 

(이 글에는 영화 <빅>의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음)

 

 

 

영화 <빅>의 주인공은 열 세살의 조쉬라는 이름의 소년이다. 옆집 사는 친구 빌리랑 어울려서 자전거를 타고 야구를 하고 노는, 그 또래의 보통의 남자아이다. 점차 이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친구 누나인 예쁜 소녀에게 반해 있기도 하다.

동네에서 열린 축제에 갔다가 좋아하는 소녀 앞에서 키가 작아서 놀이기구에 탑승 못한다는 얘기를 들은 조쉬는 실망스러운 기분으로 돌아서서 걷다가 '졸타의 예언(Zoltar speaks)'이라는 소원 비는 기계를 보게 된다.

 

 

 

 

조쉬는 홀린듯이 다가가 기계에 써있는대로 동전을 넣고 작동시켜 소원을 빈다.

"키가 컸으면 좋겠어. (I wish I were big)"

그리고 버튼을 누르자 종이가 나오고, 뒷면에 소원이 성취되었다는 문구가 적혀 나온다.

조쉬는 졸타 기계가 콘센트가 빠져 있었음을 그제서야 보게되고, 뭔가 이상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아침. 조쉬는 자신이 진짜 키가 커진 채로 눈을 뜬다. 키 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자라 있었다! 서른살 쯤 된 청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변해버린 조쉬를 엄마는 알아보지 못하고, 조쉬는 집에서 도망쳐나온다. 졸타 기계가 있던 축제 장소로 가 보지만 이미 축제는 모두 철거되어 떠난 뒤였다. 조쉬는 친구 빌리를 찾아가고, 빌리는 조쉬를 알아봐준다. 둘은 그 졸타 기계를 다시 찾아 소원을 빌기로 하고, 대도시인 뉴욕으로 간다. 조쉬와 빌리는 졸타 기계를 찾을 수 있도록 축제 일정표를 구해보지만, 일정표는 6주 이후에나 우편으로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듣는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다..)

 

어른의 몸인 조쉬는 일단 취직을 시도하여 완구 회사의 말단 전산 사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몸만 컸지 실제로는 13살 어린 아이인 조쉬는 아이들의 시점으로 장난감들을 보고 의견을 내고, 그 모습이 사장인 맥밀란의 눈에 들어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회사 사람들은 그를 특이하게 생각하고 경계하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회사의 간부인 수잔은 조쉬의 순수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면서 점차 가까워진다.

 

 

 

 

영화의 웃음 포인트는 어른의 몸을 한 조쉬가 하는 어른답지 않은 행동들에서 나온다. 조쉬는 어린 아이들이 그렇듯이 잠시를 가만 있지 못하고 계속 몸을 움직이고 사방에 호기심을 보이고 만지작거리고 장난을 치고 뛰어다닌다. 회사 파티에 (어른들은 입지 않는) 요란한 디자인의 턱시도를 입고 참석하기도 한다. 조쉬가 구한 아파트는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장난감들과 콜라 자판기 등등으로 가득 차 있다. (어렸을 때 이 영화 보고 나도 저런 콜라 자판기가 갖고 싶었다.. ㅋㅋ)

 

반면 조쉬의 그런 어린 아이 같은 점이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아직 아이이기 때문에 장난감을 어른의 시각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었고, 학교에서 배운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콜럼버스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있기도 하고 어린 아이에게 산수를 가르쳐주는 것이 더 쉽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특히 조쉬가 어른들이 하는 '성적인 의미'의 말들을 알아듣지 못하는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배치하여 아직 어린 아이임을 보여준다. 방을 보고 싶다는 수잔의 말에 거리낌없이 집으로 데려온 후, 수잔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수잔과 트램폴린에서 놀고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이층 침대에서 각각 잠이 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해하던 수잔은 이내 미소를 짓는다. 조쉬의 그런 순수한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수잔과 점차 관계가 발전하고 마침내 연인 사이가 된 이후부터는, 조쉬가 점점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지게 된다. 마시지 않던 커피를 먹게 되고, 어른들처럼 일에 몰두하여 빌리와 소원해지고, 그래서 사무실로 찾아온 빌리에게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오라는 말까지 하게 되어버린다.

 

 

 

 

이 부분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을 생각하게 한다. 비행기를 고치느라 정신이 없던 '나'에게 어린 왕자가 꽃의 가시에 대해 계속 묻자 화를 내는 부분이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이 볼트가 이번에도 안 빠지면 망치로 때려서 빼내야지.' 라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어린 왕자가 또다시 내 생각을 방해했다.

"그러니까 아저씨 생각으로는 꽃들이......"

"그만! 제발 좀 그만 해 둬! 난 아무것도 몰라.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대답한 것뿐이야. 난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단 말야!"

내가 소리치자 그는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중요한 일이라고?"

어린 왕자는 시커멓게 기름투성이가 된 손으로 망치를 잡고 그에게는 매우 흉측해 보이는 물체 위로 몸을 숙이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어른들처럼 말하고 있잖아!"

이 말에 나는 좀 부끄러워졌다. 그는 사정없이 계속 말했다.

"아저씨는 모든 걸 혼동하고 있어...... 모든 걸 혼동하고 있단 말야!"

 

어른들은 인생이나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아닌, 눈 앞의 숫자나 계산 따위를 중요하다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화를 내고 나간 빌리에게 미안함을 느낀 조쉬는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조쉬는 거리로 나가서 아이들을 본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고, 낙엽 속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학교에서 사진을 찍는 아이들을 보고, 야구하고 노는 아이들을 본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못하는 그것을.

 

빌리는 조쉬 대신 열심히 졸타 기계의 행방을 찾아내고, 다시 조쉬를 찾아와 졸타 기계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간다. 그리고 조쉬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졸타 기계가 있다는 공원으로 간다.

 

 

 

 

그리고 다시 졸타 기계를 작동시켜, 다시 소원을 빈다.

 

이 영화의 결말은 기묘한 해피엔딩이다. 마침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수잔이 공원으로 따라와서 소원을 빈 직후의 조쉬를 만난다. 조쉬는 수잔에게 같이 어린 아이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하지만, 수잔은 거절한다. 그때 수잔의 대답은 이랬다.

 

 

 

 

이것은 어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답일 것이다. 앞서 글 첫머리에서 내가 대답한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그 시절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은 것.

그리고 수잔은 조쉬를 집에 데려다준다. 수잔의 차에서 내려 걸어가던 조쉬가 뒤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 다시 걸어가는 그 어느 순간, 조쉬는 다시 열 세살 아이의 몸으로 변하여 다시 돌아본다. 커져버린 정장과 커져버린 구두를 신은 소년 조쉬와 수잔이 눈이 마주치고, 수잔은 미소를 짓는다. 아이가 된 조쉬가 집으로 뛰어들어가 엄마와 반가운 재회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예전처럼 빌리와 조쉬가 같이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며 야구 얘기를 하는 것이다.

 

조쉬는 이제 다시 다른 사람들처럼 천천히 나이가 들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 조쉬 역시 다른 어른들과 똑같은, 순수함 같은 것은 없는 보통의 어른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뭐 나쁜 건 아닐 것이다. 다들 그렇게 어른이 되지 않나.

좀 더 좋은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얼마나 생각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