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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1903 / Again] 열흘짜리 악몽 by 란테곰.


잘 시간이 되었다. 방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고, 안경을 벗어 옆에 놓은 후 눈을 감았다. 설핏 잠이 들 무렵, 미간에 차가운 물방울이 똑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깜짝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눈을 뜨고 안경을 낀 후 방 불을 켰다. 천장은 멀쩡했고 내 이마 어디에도 물이 닿은 흔적은 없었다. 것참 희한한 꿈이구나라고 중얼거리곤 다시 방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고, 안경을 벗어 옆에 놓은 후 눈을 감았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막 잠들 무렵 미간에 물방울을 맞는 느낌에 잠을 설쳤다. 더군다나 물방울은 처음보다 다음날, 그 다음날이 되어가며 점점 굵어져 나흘째엔 한여름 태풍때 내리는 비를 맞는 기분이 들었고 닷새째 되던 날엔 마치 우박을 맞는 기분이었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잠에 막 빠지려는 상황에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게 되는 경험을 며칠 반복하자니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었다. 잠자리가 문제인가 싶어 눕는 방향을 바꿔보기도 하고 베개를 바꿔보기도 하고 심지어 모로 누워 자보기도 했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 일주일 쯤 지속되자 잠드는 것 자체가 두려워질 지경이 되었다. 베개에 머리를 묻고 엎드려 잠이 드는데도 미간에 무언가가 퍽 하고 박히는 느낌에 잠을 깬 뒤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낮에 잠들면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론 어떻게든 낮에 자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유일한 해결책을 지속하자니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속이 쓰렸지만 방법이 없었다. 물방울로 시작했던 미간 때리기는 우박을 거쳐 돌멩이를 지나 골프공을 넘어 야구공, 심지어 볼링공까지 성장(?)했다. 저 멀리 높은 곳에서 무언가를 들고 있다가 타이밍을 맞춰서 놓으면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 미간을 때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열흘 째. 방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고, 안경을 벗어 옆에 놓은 후 눈을 감았다. 또 같은 꿈을 꾸진 않길 바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설핏 잠이 들 무렵, 인기척이 느껴져 얼른 눈을 떴다. 그리고 난 하늘에서 나를 향해 떨어져내리던, 칼을 깍지 낀 양손으로 마주쥔 여자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칼은 보기좋게 내 머리에 푸욱 박혔다.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깬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잠자리에 눕지 못했다. 



그 다음날, 미간에 커다란 여드름이 올라왔다. 여드름을 짜내자 꿈이 멈췄다. 아직 작은 멍울이 남아있어 손이 스칠 때마다 꿈이 떠올라 움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