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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1904 / 식성] 모르면 약이다 by 란테곰.

 

맛이 안 난다, 뭔가 부족하다. 그럴 땐 이거 조금만 넣어주면 맛이 확 산다. 미ㅇ, 다시ㅇ, 연ㅇ 등으로 대표되는 조미료 얘기다.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상만 받아먹던 내가 갑자기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을 무렵, 조미료는 내 부족한 능력을 메꿔주는 훌륭한 친구이자 버팀목이었다. 솔직히 어떻게 해도 맛이 나오니까. 진하고 자극적인 맛을 한참 찾을 무렵엔 달걀과 조미료만으로 볶음밥을 해 먹었을 정도 - 그걸 먹어본 지인 중 한 명은 이건 먹는 게 아니라고 표현했다 - 였다.

 

그렇게 처음 요리를 하게 된 지 십수 년이 지나서, 동생과 내가 따로 나와 살게 될 무렵 우리 집에서 조미료가 사라졌다. 다 똑같은 맛, 뭔가 느끼한 맛이 느껴진다는 것에 공감한 것도 이유였고, 조미료가 없이 며칠 요리를 해보니 없어도 그럭저럭 맛이 나온다는 것도 이유였다. 국을 끓일 적에 꼭 찾던 친구, 든든한 버팀목이 사라지자 입맛이 조금씩 싱거워졌다. 밖에서 사 먹는 밥이, 회사에서 주는 밥이 점점 짜고 자극적이라고 느껴졌다.

 

점점 싱거워진 간에 익숙해지며 평소엔 거들떠보지 않던 음식이나 반찬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된장으로 무친 나물들을 즐기고 들깻가루를 넣고 볶은 채소들을 반기며 각종 맑은국을 찬양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시골 할머니 집에 가면 나올 법한 밥상이 우리집에 차려졌다. 수많은 주부가 인터넷에 쏘아 올린 작은 공들인 블로그 레시피의 도움을 받아 김치라는 이름이 붙은 반찬을 직접 담그게 되었고 재밌어 보이는 요리들을 보면 즐겨찾기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맛을 내는 방법이 조금 더 다양해지고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 더 많아졌지만 그래도 훨씬 만족스러운 맛이 나게 되었다. 동생과 함께 살기에 동생 입맛에 맞는 요리들도 가끔 하게 되는데, 동생 역시 밖에서 밥을 먹다 보면 너무 짜거나, 조미료를 잔뜩 넣은 것 같은 맛을 느낄 때가 있다고 종종 말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생은 모른다. 동생이 즐겨 먹는 천 원짜리 레토르트 사골국과 내가 볶음밥 할 적에 넣는 굴소스도 조미료라는 사실을. 볶음밥 할 때 굴소스를 좀 많이 넣으면 조금 더 맛있더라, 는 얘기를 하면서 사골국을 데워와 먹는 모습을 보고선 그냥 웃고 말았다. 그래서 사골국 마아아아아아않이 먹으라고 사골 분말을 샀다. 어떤 찌개든 이거 들어가면 조미료나 치킨 스톡 수준의 반칙 카드라고 미리 말해놓았는데, 오히려 내심 기대하는 눈치라 조금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