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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1903 / Again] 또 다시 오늘 by 에일레스

 

그의 이름은 필 코너스. 피츠버그 지역 방송사의 기상 예보관이다.

시니컬하고 매사에 불만 많은 그는 PD 리타, 카메라맨 래리와 함께 성촉절(Groundhog day) 취재를 위해 펑츄토니 마을로 가게 된다. 성촉절은 '펑츄토니 필'이라고 불리는 마못(다람쥐과의 동물)을 이용해 봄이 언제 시작될지 점치는 전통 축제다. 필은 성촉절도 펑츄토니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빨리 펑츄토니 마을을 떠날 생각만 한다. 그러나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갑작스러운 폭설 때문에 필은 펑츄토니 마을에 발이 묶인다.

그렇게 다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는데, 뭔가 이상하다. 라디오에서는 전날과 동일한 노래와 멘트가 흘러나오고, 전날 만났던 사람들이 또 똑같이 그에게 말을 걸어온다. 또 다시 2월 2일, 성촉절이라는 것이다!



※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

네티즌 9.18 (1,502) 평점주기

개요 멜로/로맨스, 코미디 1993.12.04. 개봉 101분 미국 15세 관람가

감독 해롤드 래미스




필은 처음에는 당황해하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기까지 한다.

그 다음에는 마구 일탈을 하기 시작한다. 음주 운전을 하고,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반복되는 날들에서 만난 사람들의 정보를 취합해서 모르는 여자에게 동창인양 접근해서 꼬시기도 하고, 은행 돈을 훔쳐서 흥청망청 쓰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다정한 성격의 매력적인 PD 리타의 마음을 얻으려 온갖 수를 동원한다. 리타의 취향을 파악하고, 리타가 좋아하는 것들을 익히고, 계속 리타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애쓰지만 이상하게도 리타는 좀처럼 그에게 넘어오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에 늘 실패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하루에 지친 필은 급기야 폭주하기 시작한다. 차 사고를 내고, 전기 감전을 시도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지만 여전히 2월 2일, 그날에 갇혀 눈을 뜬다.

 

 

 


<사랑의 블랙홀>은 흔히 '타임루프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의 조상격(?)인 작품이다. 주인공 필은 몇번을 다시 일어나도 똑같은 날인, 말 그대로 시간 속에 갇히게 된다.

매일이 똑같은 날이라면 어떨까?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영화 속 필처럼, 처음에는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거나 안해본 것들을 하거나- 이런 저런 일탈들을 하겠지. 그리고 그 다음엔? 필처럼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죽을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시도 후에도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음을 알게 된 필은 체념한 마음으로 리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한다. 자신은 반복되는 하루 속에 살고 있다고. 이게 무슨 소린가 의아해하던 리타는 필이 초면이어야 할 펑츄토니 사람들의 개인 신상을 낱낱이 알고 있고, 심지어 자신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와 같이 있어주기로 한다.




리타와 필은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필은 다음날이 되면 또 다시 리타가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새로운 하루가 될거라는 생각에 우울해한다. 그런 필에게 리타는 반복되는 하루도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일러준다.

 

 

 

새벽이 되고, 리타가 피곤함에 잠이 들자 필은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필은 또 다시 2월 2일 그 날로 돌아가 눈을 뜬다.


그런데 이번엔 필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매일 똑같은 하루인 것은 같지만, 필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이다.

늘 외면하던 마을의 노숙자 노인에게 돈을 주고, 성촉절 취재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얼음 조각과 피아노 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받아서 구해주고, 노부인들이 타고 가는 자동차의 터진 타이어를 교체해주고, 식당에서 음식물에 기도가 막힌 남자를 도와 기도에서 음식물이 빠져나오게 한다. 펑츄토니 마을의 그날 하루를 너무나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파티장에서 필을 만난 리타는 파티장의 많은 사람들이 필에게 와서 도움받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것을 보고 놀라워한다. 마침내 리타는 필에게 마음을 열고, 필에게도 드디어 새로운 아침이 찾아온다.





이 영화의 교훈을 몇가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라는 것,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다가가라는 것,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것,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어쩌면 꽤나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이지만, 이 영화 속에서만큼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전달되는 메시지이다.

반복되는 하루에서 필을 구원한 것은 저런 좋은 가치들이었으니 말이다.





+ 덧붙이는 tmi

이 영화의 감독 해롤드 래미스는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에서 이곤 역으로 나왔던 배우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도 의사 역으로 짧게 출연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필 역의 빌 머레이 역시 <고스트 버스터즈>에 출연한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2016년 여성 버전으로 리메이크된 <고스트 버스터즈>에는 빌 머레이를 비롯한 원작의 배우들이 깜짝 출연했으나, 해롤드 래미스는 2014년에 세상을 떠난 탓에 출연하지 못했다. 그게 참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