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한 삶을 사는 것은, 절대 다수가 소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불편하게 여길 경우 소수는 자신을 감추거나 절대 다수인 척 위장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이슈인 LGBT나 정치 얘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는 왼손잡이에 대한 시선은 꽤나 좋은 예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성장기 시절 겪었던 비슷한 경험들이 있다. 한글을 배울 적 왼손으로 연필을 잡을 때마다 혼나던 일이나 명절마다 찾아갔던 큰집에서의 불편한 식사 - 젓가락질 오른손으로 하지 않으면 세뱃돈을 주지 않겠다는 협박(?)을 듣고 있노라면 그 맛있는 동그랑땡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 , 세상 답답한 가위질 등등. 결국 등쌀과 압박을 못이겨 그들이 원하는대로 오른손으로 고치거나, 도저히 안 되겠는 것은 아예 한 귀로 듣고 흘리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성장해왔지만 오른손잡이였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갈등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사실은 아직도 조금 눈치 보일 때가 있다는 얘기를 너무 거창하게 했다. 오른손에 시계를 차면 - 나는 편한데 - 정작 다른 사람들이 어색해하는 것, PC 마우스도 비슷한 이유로 처음엔 왼손으로 쓰다가 오른손으로 바꾼 것, 내 옆에서 같이 밥 먹을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끔 왼편 끝자리를 사수하는 것 등등. 어릴 적에 겪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상대의 관심을 흘려내는 것에 익숙해졌고 또 상대가 느끼는 불편함을 통해 내 특성이 나타나지 않게끔 하는 것이 나 스스로도 제일 편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즉,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숨기게 되었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교정이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 것 같다.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만드는 것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라 여겼던 세대의 사람들과는 달리 지금은 왼손잡이라는 특질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온 것일까. 살구색을 살색이라고 부르는 것은 차별적인 표현이라며 사장된 것처럼, 오른손은 더 이상 '바른'손이 아닌 왼손의 반대편에 달려 서로 마주보는 손이 되길 바라는 나는- 10% 중의 한 명이다.
왼손잡이 ―김광규(1941∼)
남들은 모두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글씨 쓰고
방아쇠를 당기고
악수하는데
왜 너만 왼손잡이냐고
윽박지르지 마라 당신도
왼손에 시계를 차고
왼손에 전화 수화기를 들고
왼손에 턱을 고인 채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느냐
험한 길을 달려가는 버스 속에서
한 손으로 짐을 들고
또 한 손으로 손잡이를 붙들어야 하듯
당신에게도 왼손이 필요하고
나에게도 오른손이 필요하다
거울을 들여다보아라
당신은 지금 왼손으로
면도를 하고 있고
나는 지금 오른손으로
빗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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