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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1901 / 덕후] 소년이여 성덕이 되어라. by 란테곰

 

내가 학교 이외의 공간에서 처음 친해졌던 사람은 게임을 즐기기 위해 일본어를 배운 사람이었다. 당시엔 흔한(?) 케이스였다. 공략집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거니와 검색은 꿈도 못 꿀 때였기에, 일본어로 된 RPG 게임을 즐기려면 (공략집을 돈 내고 구입하거나) 일본어를 배우는 방법뿐이었다. 그렇게 게임을 통해 자연스레 일본어와 문화에 익숙해진 다음 애니나 노래 등을 찾게 되면서 좋아하는 범위가 확장되는 방식이었다.

 

당시 한일문화교류가 전부터 조금씩 이뤄졌으나 3게임기용 게임과 국제 영화제 수상작 외 애니메이션은 불가 시절이었기 때문에, 좋게 보면 선구자지만 나쁘게 보면 불법 외국 문화 교류 집단이기도 했다. 저작권에 대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땐 소리바다가 전국민적으로 유행했을 때였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그때 당시 나는 친해진 사람들의 영향으로 내가 놀던 오락실 길 건너에 있던 휴대폰 가게 사장님이 부업(?)으로 했던, 일본 애니를 녹화한 CD를 빌려다가 PC방에서 보곤 했었다. 같이 살던 형이 쓰던 md 플레이어엔 글레이니 라르캉이니 엑스재팬이니 등등 일본 노래가 가득했었고, 그들이 게임을 할 적에 일본어 대화나 스토리를 설명해주는 것을 들으며 구경을 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난 그냥 리듬 게임을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일 뿐이었다.

 

매너 뿐만이 아니라 환경 역시 사람을 만든다. 난 그렇게 환경적인 영향으로 문화적 선구자(?)’ 가 되었다. 하지만 대구에서 같이 살게 된 사람들은, 이사 오기 전에 친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루트를 거친 사람들이었지만 속칭 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한 마디로 신세계였다. 그리고 나는 말 그대로 풋내기이자 애송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 같이 살던 사람들은 모두 일본어로 대화가 가능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애니나 TV 프로그램은 자막 없이 볼 수 있었고 게임마저도 각자 자랑하는 영역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나를 제외하면 모두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인연이 있긴 했지만 어떻게 저렇게 조합이 되었을까 싶을 정도의 모임이었다. 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의 형은 20년도 더 된 pc통신 시대에 엄청 빠른 대사로 유명하던 애니메이션 자막을 만들기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난 대구에서도 그냥 리듬 게임을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이자 막내였다. 단지 매주 애니를 보고 (그들은 자막 없이, 1주일 후 자막과 함께), 매일 게임을 하고 (격투 게임은 늘 져서 다들 잘 때 계속 연습했었고, 뿌요뿌요는 아예 손을 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끔 밖에서 놀다 노래방을 가면 애니 노래 예약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사람들과 함께 지냈기에, 이사 오기 전처럼 환경적인 영향으로 인해 좀 더 깊은 영역의덕후가 되어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오타쿠라는 단어가 쓰이기 훨씬 전부터 자신의 취향을 굳혔던 사람들이기에 낯선 사람들 앞에선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스러워했고, 알음알음 소개를 받는 사람들도 대부분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어디 코스프레 팀의 누구, 무슨 동인지를 그리는 누구, 어디 사이트에서 야오이를 쓰는 누구, 어디 게임의 뭐시기. 실제로 책을 냈던 만화가 등등.

 

 

 

지금이야 애니를 찾아볼 일도 애니 노래를 들을 일도 거의 없지만, 예전에 그랬던 경험이 있어서일까. 난 그쪽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큰 거부감이 없다. 요즘에는 성공한 덕후라는 표현도 있고 팬질 역시 덕질로 표현하는 등 여러모로 덕질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지만, 덕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일 적에만 해도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다. 게다가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 해도 이번 주제를 정할 적에 결국 같은 말이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덕후라 불리는 그들의 이미지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들 알 듯 몇몇 성공한 덕후는 주위에서도 인정받으니, 부디 모두 성공하여 인정받는 덕후가 되길 바란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