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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11 / 젓가락] 교정, 틀어지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 by 란테곰.


유년기 시절,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곧 교정도 따라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연필을 처음 잡은 날, 칼질을 처음 해본 날, 기타 수많은 '처음' 은 즐거움보다는 답답함이 많았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안 된다며 굳이 불편한 오른손으로 연필을 잡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칼질도 왜 오른손으로 해야 하는지 부모님은 제대로 설명해주시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하면 어디 가서 못 배웠다는 얘기 듣는다' 가 전부였다. 


그런 교정의 최고봉은 식사 시간이었다. 젓가락질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을 적, 내 젓가락질을 지켜보시던 부모님의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하루 세 번 반드시 거치는 일이고 또 피할 수도 없는 일. 같이 식사를 하는 어른들 중 누군가가 기분이 좋지 않다 싶으면 그 날의 식사 시간은 그저 가시방석이었다. 심할 적엔 어디 가서 못 배웠다는 얘기 듣는다 정도로 끝나지 않고, '젓가락질 잘 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 어른들 중 누군가의 기분 안 좋음이 심할 적엔 맞기도 했고, 먹던 밥을 뺏기기도 했었다.


어른들의 눈치를 잔뜩 봐가며 불편한 오른손으로 깨작깨작 젓가락질을 하며 난 생각했었다. 이 세상 불편한 짓을 강요받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못 배웠다는 얘기 듣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나중에 내가 누군가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 장인 장모가 내 젓가락질을 보면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에 공감을 해야 되나. 명절에만, 제사 때만 만나는 친척들마저도 꼭 한 마디씩을 거드실 정도로 이게 중요한 일인가.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 다음의 단위는 만만이라고 읽어야 되나를 혼자 고민하고 궁금해하던 때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렇기에 어른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저 맞기 싫으니까, 큰소리 듣기 싫으니까 따랐을 뿐이었다. 마음이 가지 않는 교정이 먹힐 리가 없었다. 내 젓가락질은 완전 이형異形 혹은 아류我流에 가깝게 굳어졌다. 


크고 나서 딱 한 번 내 젓가락질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꺼낸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십대 초반이었다. 그렇게 젓가락질하면 못 배웠다는 얘기 듣는다는 얘길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얘길 했었다. 허허허 그래 하고 넘길랬더니 정색을 했다. 회사에서 밥 먹을 때마다 눈칫밥 먹고 싶냐는 예를 들어가며 설득하려 했다. 일 잘 하고 사람들이랑 잘 지내는게 중요하지 그거에 비하면 젓가락질 정도는 아무도 신경 안 쓸 것 같다 라고 답을 했더니 그는 그런 사람이 둘이 있다면 젓가락질 잘 하는 사람이 더 예쁨받을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뒤 난 그와의 대화에서 관심을 껐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가부다- 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연필은 오른손에 정착했고 칼질은 나 스스로 오른손으로 바꾸었다. 발을 쓰는 공은 왼발로 차지만 개발 수준이라 관심이 없었고 손을 쓰는 공놀이는 '왼손은 거들 뿐' 이라는 한 마디의 영향으로 오른손을 쓰는 것이 굳어졌다. 도구를 쓰는 놀이의 경우 왼손을 주로 쓰는데, 그것만으로도 신기하다는 의견을 꽤 많이 들었다. 오른손으로 바꾸는 편이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내 젓가락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젓가락질에 큰 관심이 없고, 관심이 있다 한들 '그렇게 하면 불편하지 않나 혹은 어렵지 않나?' 수준의 질문만 몇 번 받았을 뿐이었다. 내가 어릴 적 어른들이 걱정하던 결혼 어쩌구는 아마 요번 삶엔 없을 것 같아 신경쓰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