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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10 / 게으름] 발췌독의 위험함 by 김교주

독서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뜻을 생각하며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읽는 정독
한 권의 책을 끊이지 않고 처음부터 쭈욱 읽는 통독

왕창(?)읽는 다독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건 발췌독 이다. 





사람이 발췌독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일 거다.

지도나 사전 같은, 발췌독을 할 수 밖에 없는 책을 읽기 때문(물론 가끔 사전을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외우는 놈들도 있지만 그런 애들은 예외로 하고)이거나, 이번 달 우리의 주제에 맞게 게으르기 때문이거나.

그리고 나는 최근에, 군신처럼, 트위터에서(ㅎㅎ) 발췌(독)의 위험함을 알았다. 




트위터에는 봇, 이라는 게 있다. 

다수의 트위터리언이 하는 것처럼 자기 일상을 공유하거나 사진을 올리거나 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로봇처럼, 한 가지 테마에 대해서 자동으로 트윗을 올리는 사람들(프로그램)이다. 그들은 에반게리온봇이기도 하고, 엘지트윈스봇 이기도 하고, 심지어 셜록홈즈나 가스파드(네이버 웹툰 선천적 얼간이들 의 그 가스파드)네 둘째형봇이기도 하다.


그리고 문제가 된 건 무려 詩봇이었다.

이 시봇이 자기 마음에 드는 시를 잘라서 뒀다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자동으로 트윗을 하기 시작한 것까지는, 그래,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발췌란 언제나 위험함을 내포하고 있게 마련이다. 






아주 작은 손도끼다

순종하지 않는 년은 바로 죽인다

돌고 돌아 그년이 다 그년이다

나는 네미 씹할 왕자지다

아가씨, 뒷면도 한번 봐야지

산발한 파마머리의 한 여자 얼굴에

볼펜 심지만 한 구멍이 숭숭하다

내 아내야

아, 내



말해달라. 

위의 시를 보았을 때 당신의 느낌을.


시봇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시의 이 부분을 잘라 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 시는 이런 시가 아니었다. 이렇게 소비되어서는 안되는 시다. 여성 시인-시인의 성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이 여성의 목소리로 쓴 시다. 시인이 방금 당신이 느낀 그 감정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이 시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랬을리 없다. 그래서는 안되는 시였다.


가끔 인터넷에서, 신문에서, 또 방송에서 누군가의 말과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다 쓰는 이들을 본다. 

가져다 쓸 때 가져다 쓰더라도 제 때 제대로 된 곳에 맞는 문맥으로 쓰인다면 조금은 덜 처참했을까. 그들은 누군가의 말과 글에 대해 그만큼 고민하지 않고, 그저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수박 겉핥기처럼 스치고 지나간 부분을 자기 입맛에 맞게 가공해서 가져갈 때가 태반이다.

그리고는 설화와 필화에 휩싸이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 억울함의 기저에 본인 스스로의 게으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까. 정말 그럴까. 



김민정 시인의 <아내라는 이름의 아, 네> 전문을 첨부한다. 이 시는 원래, 이런 시였다.




아내라는 이름의 아, 네

                                                                            김민정

 

 

 

택시 앞좌석에 타고 보니 맨발의 기사다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번갈아 밟는데

열 발가락을 열 손가락처럼 꼬물댄다

아가씨, 이거 큰 소리로 한번 읽어봐

룸미러에 코팅된 종이 하나

양면 사진을 펜던트로 단 목걸이 처럼

줄 길게 걸려 있다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면서 딴청인데

기사가 내 팔을 툭툭 친다

아주 작은 손도끼다

순종하지 않는 년은 바로 죽인다

돌고 돌아 그년이 다 그년이다

나는 네미 씹할 왕자지다

아가씨, 뒷면도 한번 봐야지

산발한 파마머리의 한 여자 얼굴에

볼펜 심지만 한 구멍이 숭숭하다

내 아내야

아, 내

잡는 대로 내가 거기를 아예 째길 작정이야

아, 네

아주 짝 벌어지게 쪼갠단 말씀이야

아, 네

세운상가에서 출발한 택시가

복날에 길게 줄 선 고려삼계탕 앞에 선다

아가씨,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거스름돈 3,200원 너 다 드시고

나는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