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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11 / 젓가락] 젓가락이 시옷 받침인게 그렇게 중요한가 by 에일레스

 

1983년, 국문과 학생인 인우는 어느 비오는 날 우산으로 뛰어들어온 여자 태희를 만난다. 태희와 인우는 열렬한 사랑에 빠지지만, 인우의 군입대를 앞두고 갑자기 태희가 사라져버린다.

2000년,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자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서 살고 있는 인우는 어쩐지 태희를 연상시키는 한 사람을 만난다. 태희의 작은 습관부터 태희가 했던 말, 태희의 소지품까지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은.. 하필이면 인우가 가르치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현빈. 인우는 겉잡을 수 없는 혼란과 다시 피어나는 사랑의 감정에 괴로워한다.

 

 

 

 

번지 점프를 하다 (Bungee Jumping Of Their Own, 2000)

네티즌 8.99 (2,333) 평점주기
개요 멜로/로맨스 2001.02.03. 개봉 101분 한국 15세 관람가
감독 김대승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과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동성애 설정 때문에 꽤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사실 굳이 동성애적인 부분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멜로 영화로서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운명처럼 우산 속으로 뛰어들어온 여자, 첫눈에 반한다는 것을 믿지 않던 남자가 그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캠퍼스에서 다시 만난 그 여자에게 올인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추억을 쌓고, 불같이 싸웠다가도 화해하고, 수줍게 처음 밤을 같이 보내고.. 청순한 외모와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태희에게 인우가 푹 빠질 수 밖에 없음을 영화는 공들여 설명한다. 왈츠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노을 아래에서 태희가 인우에게 왈츠를 가르쳐주는 장면은 지금 봐도 지극히 아름답다.

 

그렇게 애틋했던 사랑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여자의 증발로 인해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상흔은 인우에게 가슴 깊이 남는다. 교사라면 매년 몇번씩은 들었을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라는 학생들의 장난에 인우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반응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한 인우 앞에 현빈이 나타난다. 현빈은 인우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에 있는 학생이다. 같은 학교에 혜주라는 예쁜 여자친구도 있고, 혜주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어울려 농구를 하는, 지극히 그 또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남학생이다.

그런데 현빈은 자꾸 태희를 연상하게 만든다. 태희와 왈츠를 췄던 음악이 현빈의 핸드폰 벨소리가 되어 흘러나오고, 태희가 했던 말이 ("젓가락은 시옷받침이잖아. 근데 숟가락은 왜 디귿 받침이야?") 현빈의 입을 통해 반복되자("근데 왜 숟가락은 디귿 받침이에요?") 인우는 혼란에 빠진다. 급기야 태희가 스스로의 얼굴을 새겨넣었던 라이터를 현빈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거의 이성을 잃는다.

 

 

 

 

사실 이 영화는 동성애를 다루긴 했으나 동성애 영화라고 보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의 동성애적 표현은 그저 두 사람이 각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상관없이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한다-는 절대적인 사랑의 전제를 위한 하나의 장애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태희의 환생이 현빈이기 때문에 인우가 현빈을 사랑한다는 것을 영화는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인우가 사랑한 것은 태희라는 사람 그 자체이다. 태희가 다른 모습이어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른 모습을 한 태희를 사랑하는 것이다. 현빈은 태희의 환생이라는 이유로 현빈으로서 살아온 삶 자체가 부정된다. 여자친구도 있고, 농구를 좋아하고, 나름의 친한 친구들도 있고 했던 임현빈이라는 소년의 삶은 인우를 만나 스스로가 태희의 환생임을 깨닫자마자 철저히 현빈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태희가 된다. 현빈은 그 순간 거의 증발한 것이나 다름없어지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인우가 현빈에게 끌림을 느낄 때 신경정신과를 찾아 스스로 동성애적 성향이 있는지 검사받는 장면을 넣어 그가 동성애자는 아니라는 것을 아주 공고히 보여주기까지 한다.

 

또 마음에 안 든 부분은, 태희가 사라진 후의 인우의 삶 역시 태희의 환생인 현빈을 만나면서 완전 부정되는 것이었다. 인우는 태희를 못 잊었지만, 그렇다고 태희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인우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어린 딸까지 키우고 있는 상태였다. 부인과 인우의 결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영화상에서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 남들처럼 평범하게 만나 연애하고 결혼했을 것이다. 태희와의 사랑처럼 어마어마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부인 역시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만나 결혼까지 갔을 것이다. 그런데 현빈을 만난 순간부터 인우는 철저히 부인을 외면해버린다. 부인의 역할은 인우가 스스로의 감정을 부정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술취한 인우가 부인을 강제로 덮치려고 하는 장면은 다시 보니까 좀 화도 나더라 -_-) 첫사랑, 운명적인 사랑 운운하는 영화의 특성상 이 부분이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부인 입장에서는 외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도 남자랑.. 그것도 미성년자랑..!

 

 

 

 

 

첫사랑이란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

아니, 운명적인 사랑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아니아니, 꼭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지금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해버릴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

이걸 이해를 못하는 것을 보면 난 운명적인 사랑을 하기엔 틀린 것 같기도 하다 -_-

 

 

 

 

+

 

젓가락은 시옷 받침이고 숟가락은 디귿 받침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

[ 숟가락은 한 술, 두 술 하는 ‘술’이라는 단위와 가락이 결합돼 리을이 디귿 받침으로 바뀐 것입니다. 바느질과 고리가 합쳐진 반짇고리도 디귿 받침이죠. 반면 젓가락의 경우는 한자어 ‘저(著)’에 가락이 붙었습니다. 한자어와 순우리말 사이에서 뒷말이 된소리가 되면 사이시옷을 씁니다. 숟가락과는 단어가 만들어진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 한국경제신문, '젓가락은 시옷인데 숟가락은 디귿 받침인 이유'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5&aid=0004046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