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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11 / 젓가락] 젓가락은 어떻게 동아시아를 지배했는가 by 김교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내 젓가락질은 무척 어설펐지만 부모님은 한 번도 교정 시도를 하지 않으셨다. 어느 날 가족 중에 나만 이상한 젓가락질을 하고 있음을 깨달은 나는 독학 끝에 제대로 된 젓가락질에 성공했고 그건 스물이 다 되어서였으니 퍽이나 늦은 축이었다(당연한 말이지만 교정을 딱히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던-것 같은- 내 부모님은 내가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전혀 놀라지 않으셨다.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내가 그렇게 늦게까지 젓가락질이 이상했다는 점을 모르신다).



늦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나는 이것저것을 젓가락으로 집어올리는 데에 재미를 붙였다. 메추리알 장조림, 참깨, 들깨, 쌀알이나 콩 같은 것들. 물론 그런 재미는 곧 사라져서 얼마 후에는 마치 처음부터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던 사람인 것처럼 살게 되었지만. 그리고 예전의 나처럼 젓가락질이 서툰 사람들에게 꼰대질을 하기도 했었다. 그것도 한동안이기는 했으나 어쩐지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DJ. DOC의 노래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때까지 부모님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심심치 않게 잔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자 에드워드 왕은 미국과 중국에서 공부를 한 미국인으로, 그의 이 책은 영어로 출간된 최초의 젓가락 연구라고 한다. 놀라울 것도 없는 게, 젓가락을 사용하는 국가는 아시아에서도 일부분이다.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과 몽골 정도랄까. 덩어리로 집어올릴 수 있는 밥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들, 밥이 주식은 아니더라도 그런 데에 익숙한 곳들. 젓가락이라는 식사 문화의 일부가 이들 국가의 음식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관계를 촘촘하게 흥미롭게 풀어낸 책, <젓가락> 을 읽었다. 



저자는 어째서 이들 국가들이 젓가락을 주요 식사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젓가락의 사용법을 발전시켜 왔는지, 또 나아가서는 전세계적으로 젓가락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이야기한다. 각각의 챕터에는 저마다의 흥미로움이 존재하고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럽고 분명하다.

책의 부제인 동아시아 5천년 음식문화를 집어올린 도구, 에서 힌트를 얻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제목을 정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인용서적을 표시한 페이지가 70장에 달할 만큼, 저자의 연구에는 그냥 침대에 누워 읽기 미안할 만큼의 노력이 빼곡하다. 책을 읽다가 수시로 배가 고파져서 면요리를 찾게 되었다는 것은 안 비밀. 체중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안 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