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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10 / 게으름] 게으른 관심 by 에일레스

 

몇달 전 어느날. 트위터에 갑자기 '여성 서사'가 트렌드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시간을 기점으로 바로 어제(10월 30일)에도, 또 '여성 서사'가 트렌드에 올랐다.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패턴은 동일했다.

여성 서사를 주제로 한 작품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 여성 서사를 많이 봐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 여성 서사 작품에 관심은 있지만 수가 너무 적어서 찾기 힘들고 심지어는 여성 서사가 재미가 없어서 볼 것이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 거기에 사람들이 반박한다 - 다시 반박한다 - 또 반박한다..

이 트렌드를 보고 사실 나도 트위터에 말을 보탰었다. 오늘 쓰려고 하는 글은 그래서 사실 그때 트위터에 썼던 글을 풀어서 쓰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최근에 영화 <미쓰백>이 개봉하면서, 다시 여성 서사 작품에 대한 논의가 불거져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미쓰백>은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입고 거칠게 살아가는 한 여자가 아동학대 피해자인 어린 소녀를 만나고 그 소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하고,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미쓰백>은 경쟁작들과 대비해 적은 상영관을 가지고 시작했고 그래서 초반에는 예매율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입소문을 타고, 응원해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차츰 상영관이 늘고 예매율이 올라가는 '역주행'을 시작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훈훈했던 것은 영화 상영 회차가 적다보니 시간이 맞지 않아서 영화를 직접 보러 가지는 못하면서도 예매만 해놓는, 이른바 '영혼 관람'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앞으로 다양한 성별과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응원하는 마음으로 영화표를 구입했다"[각주:1]는 기사도 있었다.

그렇다. <미쓰백>이 주목받은 것은 이 영화가 드물게 만나보는 여성 주연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여성 서사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국 영화계는 소위 '알탕 영화'라고 불리는, 남자 배우들이 떼를 지어 나오는 스타일의 영화들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비슷비슷한 남자배우들이 조금씩 조합을 달리하여 나오는, 반복적인 남성 느와르들의 끝에 <미쓰백>이 등장한 것이다. <미쓰백> 역시 제작 초기단계에서 주연을 남자 캐릭터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랬다면 그냥 흔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미쓰백>이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에도 이런저런 단점이 있기는 하다. 그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말들이 나왔으므로 따로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 주연의 영화들은 단점이 없었는가 생각하면 그것 역시 아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유독 여성 주연 작품에 대해 좀 더 냉철하게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영화에 대한 비판이라던지 이런저런 논의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도 관심이나 화제의 일부가 될 수 있으며, 그러한 과정들 역시 좋은 토론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때 나온 이야기들 중에 나를 조금 '화나게' 만든 것은 이거였다.

 

"여성 서사 작품에 관심은 있으나 여성 서사 작품의 수가 너무 적어서 볼 것이 없다."

이 말은 정말 나를 약간 화나게 했다.

여성 서사 작품이 남성 서사 작품들에 비해 수가 적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 서사 작품의 수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적었는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란 말이지.

어린 시절부터 접해왔던 여성 서사 작품만 해도 여러개를 꼽을 수 있다. 작은 아씨들. 빨강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알프스 소녀 하이디. 비밀의 화원. 소공녀. 제인 에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 외에도 아르미안의 네딸들, 바그다드 카페, 델마와 루이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컬러 퍼플, 매드맥스, 히든 피겨스.. 등의 소설들, 만화들, 영화들.

물론 남성 서사 작품들은 훨씬 더 많다. 수많은 소설과 수많은 만화들, 영화들이 저 목록들을 뒤덮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여성 서사 작품들은 늘 빛을 발해왔고, 그것을 찾는 소비자들도 늘 있어왔다.

지난해만 놓고 봐도, 영화쪽에서 가장 호평받은 작품 중 하나는 나문희가 주연한 <아이 캔 스피크>였고, 여성 히어로 영화인 <원더 우먼>은 같은 DC 코믹스의 히어로 영화들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소설 쪽에서는 베스트셀러 코너에만 가도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이 자리를 잡고 있는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관심은 있었으나 찾기 어려웠기 때문에' 보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나 비겁한 변명이 아닐까?

 

'관심'이라는 것은 행동을 수반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어떤 영화에 관심이 생긴다면 가서 보게 되는것이 보통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배우에 관심이 생겼다면 그 배우의 필모를 찾아보게 되고, 어떤 가수에 관심이 생겼다면 그 가수의 노래를 듣거나 무대영상을 보거나- 하는 과정이 일반적일 것이다. 좀더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네이버 검색어에 뭐가 떴는데 이게 뭐지 궁금하면 클릭해서 관련 기사를 읽게 된다. 이런게 하나의 관심이고 그걸 행동으로 표현하는 아주 기초적인 방식이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뭔가 궁금할때 검색만 하면 뭐든 찾아볼 수 있는 문명 시대에 살고 있다. 지리적으로 영화관이 멀고 서점이 멀어도, IPTV나 VOD로 영화보는게 너무나 간편해졌다. 책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하면 하루만에 오는데다가 그게 아니라도 심지어 이북으로 보는 것도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인프라를 탓할 것이 못된다는 얘기다.

즉, '관심이 있지만 찾을 수가 없어서 못봤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스스로의 게으름을 고백하는 것 밖에 안된다. 찾아보지도 않고 없다고 하다니요.. 아니면 그냥 관심이 없었던 거다. 차라리 관심이 없어서 안 봤다고 솔직히 말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왜 관심있는 척을 하는걸까.. 만약 어떤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이 콜드플레이'라고 말하면서 콜드플레이의 노래 제목 하나 대지 못한다면 그가 진짜 콜드플레이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특별한 관심사나 선호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것도 일종의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많이 보편적인 취향. 멜론 100위에 있는 음악들을 듣고, 흥행작이라는 영화를 보고, 베스트셀러를 사서 읽는다. 이게 나쁜 것은 아니다. 취향이니까, 존중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멜론 차트에 없는 팝이나 인디 음악을 듣고, 소규모로 개봉하는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들. 혹은, 아주 집중적이지는 않더라도, 관심사가 있고 그걸 종종 찾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들이 문화를 조금 더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도 마음으로는 이런 쪽을 추구하긴 하는데 사실 잘 안되고 있다.. ㅎ

 

더 능동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장 큰 테마가 저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