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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1810 / 게으름] 복사해서 붙여넣기 by 란테곰



수요일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려면 서로 어깨를 한껏 움츠려야만 될 것 같은 좁은 이차로에 횡단보도가 있었다. 난 신호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맞은 편에 서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하얀 운동화에 얇은 다리를 감싸듯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커다란 하얀 후드티를 걸친 여자아이였다. 찹쌀떡 저리 가랄 정도로 분칠한 하얀 얼굴에 쥐잡아먹은 듯 빨간 입술. 저기에 롱패딩만 더하면 김치김밥이지. 라고 마음의 소리를 흘려보내며 킥킥 웃었다. 


신호가 바뀌고 나와 여자아이는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달려오던 차에 치어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목요일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려면 서로 어깨를 한껏 움츠려야만 될 것 같은 좁은 이차로에 횡단보도가 있었다. 난 신호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맞은 편에 서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하얀 운동화에 얇은 다리를 감싸듯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커다란 회색 후드티를 걸친 여자아이였다. 찹쌀떡 저리 가랄 정도로 분칠한 하얀 얼굴에 쥐잡아먹은 듯 빨간 입술. 저기에 롱패딩만 더하면 김치김밥이지. 라고 마음의 소리를 흘려보내며 킥킥 웃었다. 


신호가 바뀌고 나와 여자아이는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난 그때 뭔가 낯익은 상황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달려오던 차에 치어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금요일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려면 서로 어깨를 한껏 움츠려야만 될 것 같은 좁은 이차로에 횡단보도가 있었다. 난 신호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맞은 편에 서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하얀 운동화에 얇은 다리를 감싸듯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커다란 하얀 후드티를 걸친 여자아이였다. 찹쌀떡 저리 가랄 정도로 분칠한 하얀 얼굴에 쥐잡아먹은 듯 빨간 입술. 저기에 롱패딩만 더하면 김치김밥이지. 라고 마음의 소리를 흘려보내며 킥킥 웃다가, 분명히 이건 계속 꾸던 꿈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신호가 바뀌었다. 여자아이는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난 건너지 말라고 크게 소리쳤다. 깜짝 놀란 여자아이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달려오던 차에 치어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토요일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려면 서로 어깨를 한껏 움츠려야만 될 것 같은 좁은 이차로에...  난 여자아이를 본 순간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좁디 좁은 이차로였지만 여자아이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안절부절 못하던 나는 급기야 좌우를 둘러본 뒤 빨간 불이 들어와있는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여자아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여자아이의 어깨를 부여잡고 말했다. 횡단보도 다음 번에 건너자고. 일단 좀 안쪽으로 들어와 있자고. 


여자아이는 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내 손에 붙잡힌 어깨를 빼내려 애쓰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날 뿌리친 여자아이는 마침 파란불이 들어온 횡단보도 반대편으로 도망가려 했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달려오던 차에 치어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일요일


차 두 대가 동시에...  난 여자아이를 본 순간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좁디 좁은 이차로였지만 여자아이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안절부절 못하던 나는 급기야 좌우를 둘러본 뒤 빨간 불이 들어와있는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여자아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여자아이의 어깨를 부여잡고 말했다. 횡단보도 다음 번에 건너자고. 일단 좀 안쪽으로 들어와 있자고. 


여자아이는 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내 손에 붙잡힌 어깨를 빼내려 애쓰는 것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난 이번엔 여자아이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어깨를 잡고 있던 양손으로 여자아이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그대로 여자아이를 들어 인도 안쪽으로 몰아붙였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고, 다시 빨간불로 바뀔 때까지 여자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여자아이는 엉엉 울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난 여자아이를 놓아주고서 사과를 건네며 설명했다. 미안하다, 이런 이유가 있었다. 여자아이는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경찰차가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경찰은 날 폭행 현행범으로 간주하고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구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내 이야기는 그들에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가까웠다. 



월요일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려면 서로 어깨를 한껏 움츠려야만 될 것 같은 좁은 이차로에 횡단보도가 있었다. 난 신호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맞은 편에 서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하얀 운동화에 얇은 다리를 감싸듯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커다란 하얀 후드티를 걸친 여자아이였다. 찹쌀떡 저리 가랄 정도로 분칠한 하얀 얼굴에 쥐잡아먹은 듯 빨간 입술. 저기에 롱패딩만 더하면 김치김밥이지. 라고 마음의 소리를 흘려보내며 킥킥 웃었다. 


난 몸을 돌렸다. 그리고 횡단보도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기 위해 뛰었다. 달리는 와중 뒷편에서 무언가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화요일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려면 서로 어깨를 한껏 움츠려야만 될 것 같은 좁은 이차로에 횡단보도가 있었다. 난 신호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맞은 편에 서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군데군데 짙은 빨간색이 박힌 하얀 운동화에 얇은 다리를 감싸듯 딱 달라붙는 데미지 진을 입고 커다란 시뻘건 색 후드티를 걸친 여자아이였다. 찹쌀떡 저리 가랄 정도로 분칠한 하얀 얼굴에 쥐잡아먹은 듯 빨간 입술. 저기에 롱패딩만 더하면 김치김밥이지. 라고 마음의 소리를 흘려보내며 킥킥 웃었다. 

신호가 바뀌고 나와 여자아이는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여자아이와 동선이 겹칠 것 같아 스윽 왼쪽으로 피해가는데 여자아이는 오히려 내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툭 부딪히고 나자 여자아이는 고개를 들어 날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시익 웃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우린 달려오던 차에 치었다. 


수요일

꿈을 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