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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1707 / 더위] 아아아 여름이다. by 란테곰

 

나처럼 덩치가 큰, 아니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뚱뚱한 사람에게 있어 여름이란 계절이 찾아온다는 것은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데 있어 썩 반갑지 않은 변화다. 우선 덥다. 장마 때문에 이불은 눅눅해지고, 선풍기 바람은 한없이 미지근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샘솟는데다 기껏 씻어봐야 3분 개운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먼저 떠오른 다음 수박이니 물놀이니 시원한 맥주 한 잔이니 등등이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내게 여름은 그냥 여름이라고 쓰고 더위라고 읽는 것인가보다. 게다가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우리 집 뒤 나무에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새놈들로도 모자라 매미놈들까지 가세한 여름철 소음공해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을 깨우기 일쑤인 점까지 더하면- 내게 여름은 참말로 매력 없는 계절이다. 설리가 진리였을 무렵 발을 콩콩 디디며 너무 덥다고 외치던 그녀들의 노래의 아리송함까지 한 몫 더하면 아이고 그저 그지깽깽이와 다름이 없다. 

 

어쨌든, 그런 더위를 이중고 삼중고로 겪었던 적이 두 번 있었다.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 번째는 바로 대프리카한 마디로 설명이 끝나는 대구에서의 첫 여름을 보낼 때 이야기다. 당시 살던 컨테이너 위에 시멘트를 발라 올려 만든 집은 세상과의 통로가 미닫이문 하나밖에 없었다. 쥐콩알만한 창문이 있긴 했지만 벽 너머에 누군가가 짐을 한가득 쌓아놓아 존재 의미가 없었고, 그 집엔 남자 네 명이 상시 거주했다. 그리고 나중엔 여섯 명으로 늘어났다. 거기다 지인들의 사랑방의 역할을 많이 해 여남은 명이 모여서 비디오를 빌려보며 낄낄대는 등의 일이 잦았는데, 그 방의 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은 오직 선풍기 한 대였다.

 

24시간이 모자라게 돌아가는 선풍기가 있다손 쳐도 방은, 그리고 대구는 너무 더웠다. 자연스레 취침시간이 새벽 다섯 시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때 아니면 잠들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제대로 된 끼니라고 해봐야 친구가 보내준 라면이 전부였던 때. 그 라면을 끓여먹으려면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를 각오를 해야 했고, 그래서 온종일 집에 있어도 11식을 하되 그 1식을 폭식하게끔 바뀌었다. 집 근처 자그마한 공원 벤치가 훨씬 시원해서 거기서 잠을 청하다 모기한테도 혼나고 경찰아저씨한테도 혼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만 오면 24시간이 모자라게 돌아가던 선풍기는 결국 두 달 사이에 세 대가 죽어버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가슴 아픈 이야기다.

 

두 번째는 공익 근무 시절이다. 외사촌동생 둘과 나, 내 동생까지 넷이 같이 살던 중- 작은 외사촌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취업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린 반으로 찢어지게 되었는데, 당시 내가 공익을 하던 터라 경제적으로 뭘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가까스로 집을 하나 얻어 동생과 둘이 살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방이 있고 안방엔 부엌이 붙었으며, 다른 쪽 벽엔 내 방과 통하는 문이 있고 내 방 다른 벽엔 화장실이 있는 이상한 구조의 집이었다. 그래서 안방을 쓰던 동생은 화장실에 가려면 내 방을 지나가야 했다.

 

겨울엔 꽤나 따뜻했지만 정작 세탁기가 실외에 있어 세탁기 관리가 힘들었고, 여름엔 정말 더웠다. 그렇게까지 더웠던 이유 중 하나는 집에 선풍기가 하나밖에 없었고, 다른 이유는 그나마 정말 쬐끄만한 놈이었다는 것이겠다. 월세 내기도 바쁜 와중에 취미까지 생겨 여기저기 쫓아다니느라 바빴던 터라 선풍기까지 눈이 가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여튼 그래서, 선풍기를 동생 방과 내 방 사이의 문지방에 놓고 회전을 돌려놓고선 잠을 청했었다. 지금도 가끔 동생과 그때 얘기를 하는데, 그럴 적마다 둘 다 진저리를 칠 정도로 무식하게 살았다. 아직 집에 에어컨은 없지만 다행히 선풍기는 두 대다. 그리고 올해는 휴가라는 것이 있고 또 피서라는 것을 간다. 매년 이럴 수 있다면, 뭐 여름이라 쓰고 더위라고 읽는 매력없는 녀석이 찾아오는 것도 반갑지 싶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