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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1702 / 적] 전쟁의 민낯 by 에일레스

 

우리나라는 휴전 국가이다.

1953년 휴전이 이루어졌고, 벌써 60년이 훌쩍 지났다. 휴전이 장기화되면서 사실상 거의 종전이나 다름없는 느낌이 된지 오래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개념은 사람들 인식에 그다지 크게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신기해하는 것 중 하나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갖고 있지 않는 거라는 얘기를 예전에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인지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오히려 좀 더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예로 가끔 남북간의 어떤 사건이 생겨 안보에 대한 위협이 부각되면 '빨리 전쟁하자' '북한놈들 정신차리게 해줘야한다' 같은 말을 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나도 전쟁을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뉴스들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전쟁의 끔찍함을.

 

그래서 이번에는 전쟁의 처참함이 잘 묘사된 영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고지전 (The Front Line, 2011)

네티즌 8.63(10,264)
기자·평론가 7.34(11) 평점주기
개요 전쟁, 드라마2011.07.20.133분한국15세 관람가
감독 장훈
내용 1951년, 우리가 알고 있던 전쟁은 끝났다 이제 모든 전선은 ‘고지... 줄거리더보기
부가정보 공식사이트

 

영화 <고지전>은 휴전 협정이 진행중이던 1953년, 애록 고지라는 가상의 지역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극 중 배경이 되는 애록 고지는 남북이 휴전선을 긋는데 있어 중요한 지점으로, 여기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휴전선이 위아래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남북은 이 곳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그러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방첩대에서 수사차 애록 고지로 발령받은 주인공 강은표 중위(신하균)는 죽은 줄 알았던 동창 김수혁 중위(고수)를 여기서 다시 만나는데, 수혁을 비롯한 애록 고지의 병사들이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이 감췄던 첫번째 비밀이 바로, 아래의 이 내용이다.

 

 

(부치고. 가 맞다. 디비디 자막 만든 사람들 반성해라..)

(부쳐줬어.가 맞다. 이하생략..)

 

오랜 전쟁 속에서 남북 병사들은 내통 아닌 내통을 하고 있었다. 강은표는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해야하나 말아야하나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그가 고민하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그러면서도 전투는 계속 벌어진다. 애록 고지를 차지했다가, 다시 빼앗겼다가, 다시 차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간다. 그러다보니 모든 병사들의 목적은 오로지 '살아남는 것'이 된다.

 

강은표는 여기서 아직 전쟁에 젖어들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김수혁을 비롯한 애록 고지의 악어중대 부대원들이 가진 '살아남는 것'에 대한 집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전쟁터에서 가질 수 없는 인간적인 동정 같은 것을 쉽사리 놓지 못한다.

 

북한군에 '2초'라고 불리는 저격수가 있었다. 일단 총에 먼저 맞고, 2초 후에 총성이 들린다고 해서 '2초'라 불린 그 저격수는 30명 이상의 병사를 죽인 '적'이었다. 강은표는 김수혁 등과 함께 수색을 나갔다가 2초의 저격에 맞닥뜨리는데, 2초의 총에 부대원 중 가장 어린 소년병 남성식이 사망한다. 남성식의 시신을 붙들고 슬퍼하던 그는 우연히 2초의 정체와 마주친다.

 

 

 

강은표는 2초를 그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군복을 입지 않아 그냥 근처 마을에 사는 소녀라고 생각하고, 초코렛을 쥐어주고 돌려보냈던.

 

 

 

남성식은 서울의 최신곡이라며 '전선야곡'이라는 노래를 불렀었고, 남북의 소통의 결과로 그 노래는 북한 병사들에까지 전달된 상태였다. 그 보답으로 북한 병사들이 준 색안경을 남성식이 가지고 있었고, 2초는 쓰러진 남성식의 군복에 달려있던 색안경을 보고 그 '전선야곡'이라는 노래를 알려준 사람을 자신이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강은표는 2초와의 만남에서 당황한 나머지, 다른 병사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자 2초를 그냥 놓아보내버린다.

 

 

 

 

강은표가 놓아보낸 2초의 총에 김수혁이 죽고, 강은표는 울면서 김수혁의 시신을 업고 나온다. 이때가 아마 강은표에게는 처음으로, 제대로 와 닿은 전쟁의 실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휴전 협정 체결 소식이 들린다. 남북 병사들 모두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였다. 휴전 협정 효력 발휘는 12시간 후였고, 남은 12시간동안 남북은 다시 전선 확보를 위한 죽음의 전투에 내몰리게 된다.

 

 

 

 

신일영 대위(이제훈)가 강은표에게 하는 말은 이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압축한다. 그들은 적이 아닌, 전쟁과 싸운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가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전투는 그렇게 스펙터클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병사들은 흙과 피를 뒤집어쓴채 싸우다 풀썩 스러진다. 그게 진짜 전쟁의 민낯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전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스펙터클 같은 거랑은 거리가 먼 것이다. 그건 그냥 죽거나 살거나의 치열한 현장일 뿐이다. 전쟁의 목적이 뭐였든간에 말이다. 최소한, 휴전 국가에 사는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진짜,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안보 가지고 장난치고 남북 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인간들을 감별해내는 눈이 필요하다고 본다.

바로 지금이, 그것이 중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