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년

[201109 / Taboo] 터부는 그저 거들뿐. by 김교주

어린 시절, 장남인 아버지의 무남독녀 외동딸인 내게 할머니는 종종 아쉬움을 가득 담아 말씀하셨다. 저게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려누. 조부모님과 고모들, 삼촌들과 함께 살며 특히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온통 독차지하던 나는 할머니의 그런 지청구를 귀담아듣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기고만장했었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 맏아들 내외 사이에는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 아들 없는 장남 부부, 이것은 터부라기보다는 그저 구습일 뿐이고 이제는 많은 이들이 코웃음을 치게 되는 이야기가 되기에 이르렀다. 불행히도 이 작품 속의 수연은 주변의 가시 돋친 말에서 나처럼 자유롭지 못했다. 아니, 그녀에게 쏟아진 말들은 내게 던져졌던 정감 어린 푸념과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아니 이년이 듣자듣자하니 아들 하나 낳았다고 그 밑구멍에 채 피도 마르기 전에 누굴 훈계하려 드네. 제 년이 집안 망할 짓 저지른 것도 모르고-"

"집안 망할 짓이라뇨?"

"저것들을 그냥 둘 다 기르면 세상없어도 나중엔 상피붙게 돼 있으니 집안이 망하지."

"상피붙다니요?"

"상피붙는 것도 모르냐? 계집 서방이 된단 말야. 친동기간에-"

남매 쌍둥이를 그대로 기르면 자라서 상피붙게 돼 있다는 항간 일부의 끔찍한 속설을 할머니가 곧이곧대로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그건 모르지만 아무튼 그걸 핑계로 엄마와 계집아이에게 구박이 자심했다.(<도시의 흉년>, 세계사, 16-17)


도시의흉년(상)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박완서 (세계사, 1993년)
상세보기
 

그렇다. 수연은 남매 쌍둥이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태어나자마자 할머니로부터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독설을 들어야 했던 것. 가족 구성원간의 비정상적인 관계, 남매 쌍둥이는 동기간에 근친상간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는 속설, 근친상간이라는 터부, 그리고 거기 사로잡히거나 혹은 극복하려 몸서리치는 이들의 삶. 그것이 이 작품(상하권으로 나뉘어 도합 800페이지에 달하는)을 끌고 나가는 힘이고 주된 줄기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아버지, 여성성을 소거하고 돈에 집착하는 어머니, 결혼으로 자신의 미래를 뒤바꿀 수 있다고 믿는 언니와 어머니의 지긋지긋하기까지 한 뒷바라지에 숨막혀 하는 쌍둥이 오빠 수빈. 그리고 여기에 태어난 순간 자신에게 짊어지워진 '상피붙게 되어있는' 운명을 정면으로 노려보고 선 수연을 더하면 이 가족의 기묘함이 완성된다. 아 물론 여기에는 수연과 수빈에게 얼토당토 않은 운명을 덧씌우려 드는 할머니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마치 떡국 위에 올려진 고명 마냥.

어머니는 의도적으로 할머니의 구박과 지청구를 무시하려 들지만 역시 근친상간이라는 터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수빈은 수빈대로 자신이 쌍둥이 여동생을 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수연은, 이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는 데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철없는 여대생의 맹랑한 장난질로 청춘을 소비하며 산다. 그녀의 이런 무책임하고 무게감 없는 행동거지들은 아버지의 외도, 어머니의 속물 근성, 언니의 사랑 없는 결혼을 경험하고 그 사이에서 수빈이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게 된 것과 함께 애인인 구주현과의 러브라인이 진행되면서 차츰 줄어든다.

할머니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던 ‘상피붙게 된 남녀 쌍둥이’의 비밀이 밝혀지고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 수연은 마침내 소녀가 아니라 여성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가 의도했건 아니건, 그 순간 수연도 수빈도, 자신들의 멍에에서 자유로워진 게 아닐까.

작품 전반에 걸친 근친상간에의 터부는 자극적이고 통속적이라 독자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지만 정작 이 작품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이 가족이 내부에서는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모든 결핍을 외부로부터 해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그 구성원들이 지독한 결핍을 겪는 현상 자체를 만드는 데에 근친상간이라는 터부가 지대한 영행을 미쳤을 뿐.